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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지다, 삐치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송곳은 주머니 속에 감추어도 저절로 삐져나오게 돼 있다는 데에서 생긴 말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알려짐을 이르는 말이다. '삐져나오다'는 '속에 있는 것이 겉으로 불거져 나오다'를 뜻한다. '속옷이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것을 전혀 몰랐다' '비닐봉지의 아래쪽 터진 곳으로 붓 한 자루가 삐져나와 있었다'처럼 쓰인다. 당연히 비슷한 뜻의 말이라고 알고 있는'삐지다'는 이와 달리 '칼 따위로 물건을 얇고 비스듬하게 잘라내다'를 의미한다. '김칫국에 무를 삐져 넣다' '꽁치찌개는 굵은 감자를 숭숭 삐져 넣고 푹 끓여야 제 맛이 난다' 등이 바르게 쓰인 예다.
문제는 이 '삐지다'를 많은 사람이 '성이 나서 마음이 토라지다'의 뜻으로 잘못 사용한다는 점이다. '지선이는 잘 삐져서 친구들이 같이 안 놀려고 한다.' '그렇게 조그만 일에 삐지다니 그 친구 큰일은 못할 사람일세그려.' '그 여자 한번 삐지면 되우 오래간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 이런 경우에는 '삐치다'를 써야 옳다.
'삐치다'에는 이 밖에 '일에 시달려 몸이나 마음이 몹시 느른하다'와 '글씨를 쓸 때 글자의 획을 비스듬히 내려쓰다'라는 뜻도 있다. 한편 '삐져나오다'는 '삐지다+나오다'로 구성된 말인데 이때의 '삐지다'는 그 의미가 '비어지다'(가려져 속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내밀어 나오다)와 관련된 것으로 보아 '칼 따위로 물건을 얇고 비스듬하게 잘라내다'의 뜻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 이런 뜻의 '삐지다'는 아직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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