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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가성능/최인호
아직도 외자로 된 ‘가’(可)가 쓰이기도 하고, ‘가하다, 불가하다’처럼 가지친 말도 적잖다. ‘가능·가능성’은 다듬은말로 ‘할수·될수, 할성·될성’이 나오지만 아쉽게도 잘 쓰이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크다/작다 많다/적다 높다/낮다’는 크기·분량·부피·비율에 따라 적절한 말을 골라 쓴다. 저마다 뜻과 쓰임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서 말을 배우는 시기에도 잘 구별해 쓴다. 그런데도 요즘 들어 ‘크다/많다/높다’의 구분이 흐릿해져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성질’을 나타내는 한자말 ‘성’(性)이 들어가는 말에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가능성’이 ‘많은’ 것이나 ‘높은’ 것을 가리지 않고 ‘크다’를 쓰는 이가 많고, 신문·방송 기사에서 특히 자주 보인다. 이는 제목 따위에서 크든 높든 많든 외자 ‘커’로 줄여 써 뭉개는 것과 다른 다른 문제다. ‘-성’자 돌림은 대체로 ‘많다·높다’가 어울린다.
‘가능하다’로 비롯된 쓰임에서 탈을 만드는 보기가 하나 있다.
갈수록 격식을 따지고 조건을 내거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말이 세련되어 간다(깍쟁이말투)는 징표일까? 그냥 ‘가겠다’면 될 것을 “가능한 한 가도록 노력하겠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가겠다 …” 식도 그런 말투다.
문제는 ‘가능한 한, 허락하는 한’처럼 말을 한정하는 ‘한’(限)을 제대로 갖추어 쓰는 이가 드물다는 점이다. ‘가능한’이 매김말이어서 뒤에 이름씨가 와야 한다는 문법의식이 철저하지 못한 이들이 많은데다 자주 쓰이는 말도 아니어서 잘못을 마냥 탓할 일도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말을 다듬어 쓰는 데 게으르다는 반성이 나온다. 대체로 ‘가능한 한, 허락하는 한’은 ‘되도록, 될수록, 되도록이면, 될수록이면, 가능하면, 허락하면 …’으로 바꿔쓰면 탈을 벗어날 수 있다. ‘가능성’은 ‘될성·할성·이룰성’으로 바꿔쓸 수 있다. 이때 ‘성’은 ‘性’도 좋고, ‘될성부른, ~할 성싶다’의 ‘성’이어도 좋다. 이 밖에 ‘가능성’이라면 문장에 따라 ‘여지·소지·실현성·있음직한’ 등 다른 말로 다양하게 바꿔 쓸 수도 있다.
‘가능·가능성’을 지나치게 많이 쓰게 된 데는 일본식 조어와 번역투 영향이 적지 않다. 일부 영어(can, as ~as can, possible, possibility, practicable, feasible, chance, likelihood …) 들이 들어간 말을 ‘가능한, 가능성’으로 뒤쳐 써버릇한 결과임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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