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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사람?/최인호
사람은 귀해져 가는데 사람값은 쉬 올라가지 않는다. 사람을 대우하는 사람의 생각이 말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쓸모 없는 사람, 아무짝에도 못 쓸 사람, 빌어먹을 놈, 집안의 기둥감, 나라의 동량 ….’ 욕말도 있고, 빈대·벼룩 따위 사람을 사물로 비유한 말도 있긴 하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을 두고 사물 다루듯 하는 말은 쓰지 않는다.
몇 해 전 ‘교육인적자원부’란 정부 부처 이름을 새로 지었을 때 거부감을 느낀 이들이 많았다. 사람을 두고 ‘자원’이라니 ‘산업자원부’처럼 동식물이나 무슨 광물로 여기는 처사 아니냐며 한 나라의 교육을 주관하는 부처로서 철학·생각이 둘러빠졌음을 참아 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이로써 정떨어진 이들이 적잖다.
‘필요’는 ‘물질·물건’을 두고 쓸 말이다. 예컨대 도움을 주려는 사람에게 화를 낼 때도 “자네 도움은 필요 없네!” “동정 따윈 필요 없어!” 정도였고, ‘자넨 필요 없네!’란 말에도 ‘동정·도움’이 생략된 말로 여긴다.
그런데, 요즘은 그 경계가 무너져 무척 노골적으로 넘나며 쓰인다.
“자넨 나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야!” “난 네가 필요해” “나라나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우리 회사에 전혀 불필요한 사람 ….”
‘쓸모 있는 사람’ ‘소용이 닿는 사람’이 말뜻으로야 ‘필요한 사람’이 되겠지만 정작 사람을 두고 ‘필요’란 말을 쓰기를 삼갔던 연유는 무엇인가? 인격을 그만큼 높이 치는 바탕이 깔렸던 까닭이다.
‘필요하다’와 비슷한 말로 ‘요하다’가 있다. 이는 형용사 아닌 타동사로 쓰이는데, 보통 사전들은 이를 ‘필요로 하다’로 푼다. 외자 한자말 ‘요’(要)에 뒷가지 ‘-하다’가 합친 말로서 드물지만 요즘도 쓰긴 한다. 예컨대 “수리를 요한다, 훈련을 요한다, 보안·점검을 요한다 …” 들이 그것인데, 한문·일본문투 말이다. 이는 “수리가 필요하다, 훈련이 필요하다, 보안·점검이 필요하다 …”로 바꿔 써야 자연스럽다. 영어에서(need, be in need of, stand in need of, necessitate …)도 이런 쓰임이 보이는데, 이 역시 ‘~을 필요로 하다’로 억지로 뒤치는 경향이 있다.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이 집은 수리를 필요로 한다, 이 일에 필요로 하는 물건”이라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 집은 수리를 해야겠다, 이 일에서 필요한 물건” 정도로 자릿수를 줄여 말하는 게 자연스럽다.
어른아이 구분 없이 ‘유’(you)로 쓸 정도로 대우법이 발달되지 않은 서양말에서도 사람·사물과 말은 분별해 쓰는 줄 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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