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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하고?/최인호
말을 이어갈 때는 이음씨끝을 붙여 이음마디를 만들고서 뒷마디를 따라붙이는 게 보통 방식이다. 이음씨끝 가운데 ‘-지만·-언만, -은데도/-는데도/-ㅁ에도, -으나, -기로, -거늘 …’ 들은 앞마디에서 어떤 조건을 들추고 그것이 마땅히 사실로 인정되는데도 뒷마디에서는 이를 뒤집고 다른 사실을 들추는 구실을 한다. 입말에서는 물이 덜 들었으나, 연설문·신문글을 비롯한 실용글에서는 군더더기를 끼워 호흡과 말의 자릿수를 늘리는 현상이 뚜렷하다.
뜻을 드세게 하고자 ‘간에·불구하고’를 넣어 쓰는 현상이 그렇다. 주로 ‘-에도 불구하고, -ㄴ데도 불구하고’ 따위로만 쓰이는데, 전날에는 ‘물구(勿拘)하고’도 썼으나 이는 앞에 목적어를 둔 쓰임이었다.(부인 동포들은 다소를 물구하고 혈심의연하와 …)
예삿소리 대신 된소리·거센소리가 들어가 쓰이는 경우, ‘대다·먹다·제끼다·젖히다’ 따위 도움풀이씨, 뒤집는 구실을 하는 이음씨끝들을 힘줌말로 본다. 아울러 ‘-에도 불구하고’처럼 쓰는 이은말들도 힘줌말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는 자릿수만 늘릴 뿐 강조나 호흡조절 효과를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불구(不拘)하고’를 놓을 자리는 ‘돌보지 않고, 매이지 않고’처럼 타동사로 쓰일 때이다.(염치를 불구하고, 교사 신분임을 불구하고 …)
오늘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 따위가 두드러지게 쓰이는 까닭은 일본말 영향에 더하여 영어(in spite of, for all, though, although, despite of, disregarding, nomatter, for all that, with all, never the less, none the less) 이은말·낱말이 든 문장을 상투적으로 ‘-에도 불구하고’로 박아 써 버릇한 탓으로 본다. 많이 굳어진 까닭에 쓰지 않으면 허전한 지경에 이르렀으나 마땅히 적절한 이음씨끝으로 써야 말이 가지런해지고 품위가 선다는 말이 나온다.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기업투자는 여전히 정체돼 있다 → 수출은 잘되지만 ~. △정부의 강력한 보급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 정부에서 보급 확대 정책을 강력히 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앞뒤가 안 맞고, 자기 중심적이다 → 그런데도 사람들은 ~. △국제 팔라듐 가격이 기록적인 상승폭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팔라듐 생산을 증산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팔라듐값이 기록적인 상승폭을 보이는데도 러시아는 ~.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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