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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살아있다
“용의 아홉 자식을 ‘구룡자’(九龍子)라 하는데 성격이 다 달랐다. 그중 툭하면 울음 터뜨리는 유약한 녀석이 셋째 아들인 ‘포뢰’(蒲牢)다. 이 녀석은 목청이 좋지만 겁이 많은데 특히 고래를 무서워해 고래가 나타나면 ‘고래고래’ 소리쳐 울었다. 종을 매다는 고리를 대개 ‘포뢰’ 형상으로 만드는 연유가 그래서이다. 종을 치는 통나무에 고래를 새기거나 그 형태로 깎은 게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유점사 청동범종’을 설명한 국립중앙박물관 해설사 말의 한 대목이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재미는 전문가의 도움말 덕분에 더 쏠쏠했다.
박물관 한편에 펼쳐져 있는 병풍을 가만히 지켜보고 서 있노라니 붉은색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조선 정조 때 것이니 200년을 훌쩍 넘긴 것인데, 빛깔은 여전히 고왔다. 색이 여태 안 바랜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놀라운 답이 돌아왔다. 안료의 성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채색 방법이 달라서라는 것이다. 빛깔을 선명하게 하고 변색을 늦추는 ‘배채법’ 덕분이라는 것. ‘배채’(背彩)는 종이나 비단 뒷면에 물감을 칠해 앞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포뢰’, ‘배채’의 뜻을 제대로 새기려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배추의 방언(평안, 함경)’으로 ‘배채’가 나올 뿐 제 뜻에 걸맞은 풀이와 표제어는 나오지 않았다.(표준국어대사전) 박물관에 살아있는 말이 사전에는 없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방대한 어휘’를 자랑하는 국어사전을 들추고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낱말은 ‘포뢰’, ‘배채’뿐이 아니다. ‘우리는 물론 일본조차 쓰지 않는 한자말까지 실어 한자말 비중을 부풀렸고, 일제가 우리말을 한자말로 바꿔 쓴 낱말을 그대로 담았으며, 남북한 언어를 아우르려는 욕심에, 1992년에 나온 조선말 대사전을 그대로 베껴서 섞어 냈다’(위키백과)는 비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내년에 정식 공개될 ‘개방형 한국어지식대사전’이 이런 비판을 잠재울 수 있기 바란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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