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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리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주검을 안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 <피에타>이다.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유명하지만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 피렌체에도 있다. 독일에는 나무로 조각한 피에타가 있고, 프랑스 아비뇽의 피에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교회 문의 피에타, 중동 국가인 레바논의 하리사의 피에타도 있다. 이처럼 기독교 예술 주제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어로 원래 ‘슬픔, 비탄’을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피에타>를 보았다. 조민수가 이정진을 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포스터의 장면은 영화에 나오지 않았다. 영화는 청계천 뒷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손바닥만한 공장에서 벌어지는 편치 않은 일들을 보라, 감독이 버럭 소리치며 관객의 손목을 잡아끌고 들어가 보여주는 듯했다. 육중한 공작기계 소리는 버거운 삶의 소리, 회색조의 칙칙한 화면은 간난한 살림을 드러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이무기 승천하듯 올라가는 자막에 뜻 모를 글자들이 꿈틀댔다.
청계천 거리풍경 속 글자인 ‘시보리’는 뭘까, 새삼 궁금해졌다. ‘시보리’는 짐작대로 일본말이었다. 국립국어원 누리집을 찾아보니 쓰임이 여럿인 만큼 순화어도 달랐다. 영화 속의 쇠 깎는 작업, 그러니까 ‘둥근 기물을 가공하는 선반 작업’은 ‘물레질’이었고, ‘소매나 깃 또는 밑단에 사용되는 신축성 있는 편직물’은 ‘(뜨개) 조르개’였다. ‘시보리’는 ‘물수건’과 ‘홀치기(염색)’, ‘조리개’의 뜻으로도 여전히 쓰이고 있었다. 영화관을 나서니 구름 잔뜩 낀 하늘 아래 청계천 세운상가와 잇닿은 건물이 버티고 서 있었다. 청계천을 비롯한 곳곳에 ‘시보리’와 같은 흔적이 여전히 더께로 남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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