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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돈
내가 다닌 중학교는 미션스쿨이었다. 성경이 정규 과목이어서 창세기를 비롯한 구약의 주요 내용과 신약을 두루 배웠다. 성경 시간은 내게 역사·문학 시간이기도 했다. 모세가 나오고, 홍해가 갈라지며, 십계가 등장하는 대목은 대하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었으니까. 이 내용이 담긴 출애굽기를 처음 접한 날 ‘무엇을 굽는 것이지(출애∨굽기)?’ 궁금해했던 기억이 새롭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한 기록’, 그러니까 ‘출(出)-애급(埃及·이집트의 한자 음역)-기(記)’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은 없었다. ‘출애굽기’는 ‘출애급기’의 발음이 변해서 굳어진 표현이다.
이집트를 ‘애급’처럼 한자로 쓰고 읽는 이름은 제법 많다. 호주(오스트레일리아), 독일(도이칠란트), 인도(인디아), 태국(타일랜드) 등은 여전히 쓰이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희랍인 조르바>와 나란히 서점에 꽂혀 있다. 1970~80년대 인기 있던 노래 ‘나성(로스앤젤레스)에 가면’이 나온 뒤 ‘그룹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독수리들이 부르는 가주(캘리포니아) 여인숙’처럼 장난스럽게 번역하기도 했다. 작곡가 윤이상, 시인 천상병 등이 연루되었던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은 여태 진상규명을 위한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
엊그제 <한겨레>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대한제국의 옛 주미공사관 건물을 우리 정부가 사들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이곳의 이름은 ‘대조선 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大朝鮮駐箚 美國華盛頓 公使館)으로 ‘조선이 외교 사절로서 외국에 머물러 있는(駐箚) 미국 워싱턴(華盛頓) 공사관’이란 뜻이다. 이 소식을 다루면서 ‘화성돈은 워싱턴의 음역’이라 풀어주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한때 ‘출애굽기’를 ‘-굽기’로 생뚱맞게 받아들였던 까까머리 중학생이 떠올라서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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