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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해 / 살해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씻지 못할 죄를 지었지만, 마음만은 다시 태어나 세상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살인죄로 기소된 지아무개군이 엊그제 열린 재판에서 한 최후진술의 한 대목이다. ‘씻지 못할 죄’는 어머니를 죽이고 시신을 8개월 동안 방치한 것일 터이다. 지군은 눈물을 보였고, 그의 아버지는 “절망에 빠진 아들 옆에 있어주지 못한 제 잘못”이라며 통곡했다는 내용을 전한 기사는 ‘친모(모친, 엄마, 어머니, 母) 살해’ 등의 표현으로 소식을 전했다. 이런 표현을 보면서 지난달 한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가 ‘10·26 사태(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정신병원에 감금당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ㄷ일보)는 기사가 떠올랐다. 출연자가 말한 ‘10·26 사태’를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살해는 ‘사람을 해치어 죽임’, 시해(弑害)는 ‘부모나 임금을 죽임’(표준국어대사전)이다. 살해자와 피살자의 관계에 따라 달리 표현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모친 시해’이고 ‘대통령 살해(피살)’라 해야 앞뒤가 맞는다. 10·26 당시 정부의 공식 발표는 “김(재규) 정보부장이 발사한 총탄으로 26일 저녁 7시45분 (박 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김성진 당시 문공부 장관, 1979년 10월27일 오전 7시23분)로 ‘시해’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표현은 이튿날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육군소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ㄱ신문)에 비로소 등장한다.
말과 글은 의사소통의 기본 수단이다. 언어는 생각의 틀이며 가치의 집이다. 오는 26일 순국 102주기를 맞는 안중근 의사의 ‘테러’를 ‘의거’로 기록하면 ‘의사’가 되고 ‘(일제에 대한) 반역’으로 표현하면 ‘반역자’가 된다. 사실을 기록으로 남길 때의 용어 선택과 표현은 그래서 중요하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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