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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 외국어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부연 흑백텔레비전에 눈길이 모이던 그때, 야구 중계를 도맡아 하던 아나운서가 있었다. ‘빳따’(배트), ‘스라이딩~’(슬라이딩), ‘스뚜~라익’(스트라이크)이라 우렁차게 외치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볼’을 ‘보울’이라 했던 그 아나운서의 발음이 고화질텔레비전(HDTV) 시대에 떠오른 건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기사를 접해서이다.
‘이번 수퍼볼에는 30개가 넘는 기업들이…’(ㅈ일보), ‘슈퍼보울이 오는 7일 오전…’(ㅅ일보), ‘결승전인 수퍼보울은 단일 경기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ㅈ일보),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전인 슈퍼볼(Super Bowl)과 관련된 숫자다’(한겨레). 지난 화요일에 펼쳐진 결승전 관련 기사에 나오는 경기 이름이 네 가지로 표기되었다. ‘슈퍼’와 ‘수퍼’, ‘볼’과 ‘보울’을 제 나름대로 조합해서 쓴 결과이다. 외래어 표기 규정에 맞춰 적으면 ‘슈퍼’와 ‘볼’이 맞다. ‘볼’(bowl)은 ‘서양 요리 따위에서 사용하는, 안이 깊은 식기’를 가리키지만 ‘식기 안면처럼 우묵하게 생긴 경기장’(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기도 한다. ‘큰 사발처럼 생긴 미식축구경기장(또는 우승 트로피)’에서 유래한 경기 명칭은 ‘슈퍼볼’이다.
슈퍼는 ‘super-’의 발음[su:-] 또는 [sju:-] 가운데 널리 쓰인다고 판단되는 [sju:-]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슈’로 적도록 한 것이고, 볼은 ‘중모음은 각 단모음의 음가를 살려서 적되, [ou]는 ‘오’로 적는다’는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것이다.(영어 표기, 제8항) 이처럼 외래어 표기는 관련 규범을 바탕으로 현지 발음과 관용 등을 따져 정한다. 정해진 표기는 약속처럼 함께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 ‘미국에 가보니 이렇게 발음하더라’며 제 주장을 내세우는 건 옳지 않다. 외래어는 외국인을 위한 게 아니라 한국어를 쓰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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