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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다
건국신화에는 시조가 알에서 왔다는 난생설화가 많다. 둥근 알을 태양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태양은 곧 하늘이니 건국 시조는 하늘에서 알을 빌려 내려온 것이라 믿었던 시대의 일이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왕 등이 난생설화의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유화는 그 알을 따뜻하게 덮어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아이 하나가 알을 깨고 나왔다’(고주몽),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백마가 낳은 알에서 출생했다’(박혁거세), ‘6개의 알에서 남자아이들이 태어났는데, 제일 먼저 사람으로 변한 것이 수로였고…’(김수로왕), <위키피디아>에 나온 설명이다. 모두 알에서 비롯했는데 ‘(알을) 깨고’, ‘(알에서) 출생’, ‘(알에서) 태어나’ 세상에 나온 것이다. 표현의 차이만 있는 것일까.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과 관련한 제보를 받았다. “‘갓 태어난 새끼는 털이 없는 맨몸에 온도 조절 능력이 없어서…’처럼 ‘펭귄이 태어났다’는 표현은 바르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태어나다’는 ‘사람이나 동물이 형태를 갖추어 어미의 태(胎)로부터 세상에 나오다’(표준국어대사전)라는 뜻이니 난생동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해산’, ‘태어남’과 한뜻인 ‘출생’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나다’는 이처럼 어미와 태로 연결된 젖먹이동물(포유동물)에만 쓸 수 있는 표현이지만 꼭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동물이나 사람이(사람이나 동물이) 꼴을 갖추어 세상에 나오다’(우리말큰사전·연세한국어사전)처럼 ‘태어나다’ 뜻풀이에 ‘어미의 태’를 적시하지 않은 사전이 여럿이다. ‘태’(胎)를 ‘태어나다’의 어원으로 볼 근거도 확실하지 않다. 다행히 국립국어원은 “‘태어나다’가 비유적인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해 의미의 뜻풀이 추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펭귄은 물론 닭과 공룡, 개구리도 태어날 수 있는 길이 하루속히 열리기 바란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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