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식/표지, 성력/생력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자 시험에는 함정이 있는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다. “다음 한자의 독음을 쓰시오”라는 문제에 敗北, 嫌惡, 遊說 등을 내놓았다. 두 가지 이상의 뜻과 음을 가진 한자 또는 본음과 속음이 다른 한자를 문제로 내놓아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일부는 항공기 표면에 멕시코 경찰 항공기와 같은 청색과 흰색 페인트칠을 하고, 멕시코 정부를 상징하는 표식까지 붙여 위장을 하기도 한다.” 마약조직과 관련한 중앙 일간지 기사의 한 구절이다.
기사 중의 ‘표식’은 한자로 쓰면 ‘標識’으로서 바른 독음은 ‘표지’이다. ‘識’은 ‘알다’는 뜻으로는 ‘식’으로 읽고, ‘적다, 표하다’는 뜻으로는 ‘지’로 읽는다. 그런데 ‘표지’를 ‘표식’으로 쓰거나 발음하는 사람이 많다. ‘표식’을 틀린 말로 계속 놔두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오늘날 이 말을 한자로 적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그냥 한글 낱말로 받아들여 ‘표지’와 ‘표식’을 모두 허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문제가 없지는 않다. ‘표식’을 허용하면 ‘표지판’을 ‘표식판’으로 읽는 것도 허용해야 할 터인데, 좀 지나친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 좋겠다고 주장하기가 꺼려진다.
‘인력절감’이라는 뜻의 ‘省力’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들여온 말이다. ‘省’이 ‘살피다’는 뜻이 아니고 ‘덜다’는 뜻이므로 ‘생력’으로 읽어야 한다. 사전에도 ‘생력’으로 실려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가장 많이 쓰는 기업이나 단체에서는 하나같이 ‘성력’으로 쓰고 있다. 번역 오류에 기인되었지만 되돌리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재욱/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