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입장’(立場)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서 있는 자리’다. 사전을 찾아보면 ‘당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풀이하고 ‘처지’(處地)로 순화한다고 되어 있다. ‘처지’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있는 자리’로서 ‘입장’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입장’은 뜻이 입혀지고 또 입혀지고 해서 매우 광범위하게 쓰인다. 사전은 ‘입장 표명/ 입장이 난처하다/ 입장을 밝히다/ 검찰은 수사에 성역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를 용례로 들었는데, 용례에서 ‘입장’을 ‘처지’로 바꿔보면 어색한 느낌이 든다. ‘입장이 난처하다’는 ‘처지가 난처하다’로 바꾸어도 상관없을 듯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입장’이라는 말이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있을 때는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다른 뜻으로 자꾸 옮겨가는 속도를 ‘처지’라는 말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가 남북관계에 대해 명확한 입장과 단호한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신문 칼럼에서 잘라온 구절이다. 여기서 ‘입장’은 ‘소신’과 유사한 뜻으로 쓰였다. 언론에서는 ‘입장’이라는 말이 걸치고 있는 포괄적인 의미에 제약을 좀 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의미 영역이 넓어지면서 뜻이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처지, 의지, 소신, 견해, 결심, 사실’ 등의 뜻으로 쓰일 때는 그렇게 바꾸어 주는 것이 좋겠다. 이 많은 뜻을 감당하기에는 ‘입장’이 너무 무거울 것 같다.
우재욱/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