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와 그라노!
‘무단시, 무담시, 무담씨’ 등이 표준어 ‘괜히’에 대응하는 전형적인 전라도 고장말이라면 ‘백지’는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쓰이는 고장말이다. 고장말 ‘백지’는 ‘농사가 안 되어 거두어들일 것이 없는 땅’ 또는 ‘정해진 근거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한자어 ‘백지’(白地)에서 유래한 말로, 경북 지역에서보다는 경남 지역에서 더 활발하게 쓰인다. “뭐 말인교? 백지 이 어른이 와 그런 소리 자꾸 해 쌓는교?”(<한국구비문학대계> 경남편) “여보, 당신 우리가 백지 간다 쿤께네 참으로 가는 줄 압니까? 배꼍에 딱 서가 있다가 그래 왔는데….”(위 책) 어느 소설의 한 구절에서는 ‘백찌’와 같이 나타나는데, 이는 표기상의 차이일 뿐이다. “허헛따나 십장 사둔은, 넘우 뒈세기병(두통) 좀 나수겄다고 요라는디, 백찌 나서 각고, 훼방헐 것은 없잖냐고.”(<죽음의 한 연구> 박상륭)
‘백지’의 또 다른 형태는 ‘배끼’ 혹은 ‘백지이’이다. ‘배끼’는 ‘백지>백찌>배찌>배끼’와 같은 변화를 겪은 고장말이다. “술집 주모가 말이지 배끼 따라와 가주고….”(<한국구비문학대계> 경북편) ‘백지이’는 ‘백지’에 부사를 만드는 토 ‘-이’가 결합된 것이다. “백지이 짚은 산꼴을 드가는 기라 인제.”(위 책)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