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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외래어
뒤축이 없이 발끝만 꿰게 만든 신을 ‘슬리퍼’(slipper)라 한다. 슬리퍼는 유럽에서 14세기께 신기 시작한 ‘팬터플’(pantofle)이란 신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중세 말기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고급 신발 위에 덧신는 ‘뮬’(mule)이라는 덧신이 발명되었고, 이것이 영국으로 건너가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시절에 ‘슬리퍼’라 일컫게 되었다. 이렇게 슬리퍼는 원래 실외화로 만들어졌다가 세월이 흘러 18세기에는 실내화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 안에서 주로 슬리퍼를 신는데, 거실에서는 천으로 된 것, 욕실이나 마당에서는 플라스틱이나 고무로 만든 것을 신는다. 물론 집 밖으로 나갈 때도 신는데, 단정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수년 전에 슬리퍼를 다듬은 말은 ‘실내화’다. 다만, 거실에서 신는 것은 ‘슬리퍼’인데, 플라스틱이나 고무로 만들어서 집 밖에서도 신는 것을 일본말 ‘스릿파’(スリッパ)에서 꼴이 바뀐 ‘쓰레빠’라고 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런 두 가지 용도에 따른 낱말의 갈라짐을 하나의 다듬은 말로 포괄하는 바람직한 경우가 북녘에서 보인다. 북녘에서는 이를 ‘끌신’이라고 한다. 원래 ‘슬리퍼’가 발을 미끄러뜨려서 신고 벗을 수 있는 신발이라는 뜻으로 생긴 말이다. ‘끌신’은 신을 끌고 다닌다는 뜻으로 이해되므로 그 부리는 모양에 따른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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