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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는 글
언어예절
청첩이 곧 ‘모시는 글, 모시는 말씀’이다. 초대장·초청장·청첩장으로 많이 쓰고, 청장·청찰이라고도 한다. ‘청첩장’은 ‘청첩’에 ‘장’이 붙어 겹친 말이 되었다. ‘첩’이나 ‘장’이나 공문서를 뜻하던 말이다.
삶에서 큰 일로 치는 성년(冠), 혼인(婚), 초상(喪), 제사(祭)를 두고도 두루 생각과 격식이 무척 바뀌고 흐려졌다. 허례허식 추방을 외치며 만든 ‘가정의례준칙’(대통령령)이 오히려 빛좋은 개살구가 될 지경이다. 전화·인터넷 따위 온갖 전달·소통 매체의 발달로 글발 양식이 달라져 간다. 한마디로 가볍고 어지럽다.
종이에 적어 주고받는 청첩장도 글틀이 어지럽다. 혼례 청첩은 집안 어른(부모) 쪽에서 내는 게 이치에 맞다. 상황 따라 혼인 당사자, 친구·친지·주례 등 제3자, 신랑 또는 신부 부모 쪽에서 따로, 양가에서 아울러 청첩할 때 등에 따라 글틀이 다른 게 마땅하다.
저마다 귀하디 귀한 혼례식을 올리면서 손님을 모신다며 하는 말이 조리가 서지 않고 청하는 주체가 흐릿하다면 정작 예식에 참례할 마음이 날 턱이 없다. 봉투에 모시는 이도 모심을 받는 이도 밝히지 않은 청첩장까지 나돈다. 큰일에 판박이 청첩이라니.
한 보기로 ‘주례’가 혼례 청첩을 한다면, 혼인 당자 어버이 이름, 신랑신부 이름을 밝히고서 “두 집안 어른이 가리시고 본인들 두루 백년을 함께할 뜻이 서서 여러 어른과 벗을 모신 앞에서 촛불을 밝히고자 하오니, 부디 오시어 빛을 베푸시옵고 보잘것없는 다과나마 즐겨 드소서” 정도로 모시는 글을 쓸 수 있을 터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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