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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고개와 긴고개
얼마 전 독자 한 분이 전화를 주셨다. 그분의 말씀은 서울 중구의 ‘이현’(泥峴)이 ‘진고개’인데, 이 고개 이름은 ‘길다’에서 온 말 아니냐는 말씀이었다. 땅이름 변화 과정에서 우리말의 특성이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박형상 변호사님 말처럼 ‘진고개’는 질척질척한 ‘진흙’(泥) 고개가 아니라 ‘기다랗다’는 ‘긴 고개’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에서 ‘ㄱ’이 ‘ㅈ’으로 변화하는 현상은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기름’이 ‘지름’으로, ‘길’이 ‘질’로, ‘깁다’가 ‘집다’ 따위로 소리난다. 전남 장흥의 ‘이동’(泥洞)이 ‘진골, 진골목’으로 불리는 것이나 강원도의 여러 ‘진부령’이 구불구불한 긴 고개를 뜻하는 것은 ‘길다’가 ‘질다’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람이 지나는 길이나 고개·섬 등에 ‘길다’가 붙어 형성된 땅이름은 숱하다. 전남 영암의 ‘진섬’은 ‘긴섬’이다. 이 섬은 ‘지네섬’이라고 불린 적도 있는데, ‘길다’의 다른 형태일 뿐이지 동물인 ‘지네’와는 상관이 없다. 작은 마을을 뜻하는 ‘지단말’이나 ‘지뎀말’ 등도 ‘길다’의 고장말인 ‘지다랗다’, ‘지뎀하다’가 붙어 형성된 이름들이다. ‘지다랗다’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말이며, ‘지뎀하다’ 또는 ‘지덴하다’는 최학근의 <전라남도방언연구>(1962)에 나타나듯이 전라 방언이다.
이처럼 땅이름의 이형태를 살피면 우리말 땅이름이 한자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의미가 엉뚱한 말로 변한 것들이 많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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