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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태왕비
광개토대왕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한 임금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는 광개토왕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 ‘대왕’이라는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길림성 압록강가 집안에서 광개토대왕비가 발굴됨으로써 사기의 기록을 완전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 비문의 제1면 상단에는 ‘영락태왕’이라는 기록이 나오며, 제4면 하단에는 ‘국강상광개토경 호태왕’이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그래서 이 비문을 일반적으로 ‘호태왕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비문은, 제1면의 ‘왜이 신묘년 래도해파 백잔□□신라’(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斤羅?)라는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일본 학자와 한국 학자들 사이의 논쟁이 격화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이 비문에 고구려의 간략한 역사가 기록돼 있고, 또 고구려계 땅이름이 상당수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는 듯하다. 이 비문의 내용은 고구려 시조인 추모왕에 대한 기록으로부터 영락태왕의 연도별 행적, 그리고 무덤을 만들고 지키는 원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비문 속에 나타나는 영락 6년에 광개토왕이 공략한 땅이름과 묘지기들을 배정하면서 거론한 땅이름이다. 그 가운데는 ‘모로’, ‘모루’, ‘구루’가 붙은 땅이름이 상당수 발견된다. 또한 압록강으로 추정되는 ‘압로’도 다섯 곳이나 발견된다. 이들은 마을을 뜻하는 우리말 어휘다. 16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호태왕이 밟고 간 땅이름은 우리말 속에 녹아들어 있는 셈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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