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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해산 60년 만에 해냈다"…<친일인명사전> 공개
[현장] 박정희·장면·김성수…유력 인사 4389명 '친일 행위' 수록
친일인사 4389명의 행적을 다룬 <친일인명사전>이 편찬 작업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세상에 공개됐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해산된 지 60년, 1966년 고(故) 임종국 선생이 <친일문학론>으로 친일 문제를 재차 제기한 지 43년 만이다.
8일 오후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 묘소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 대회'를 열고 사전을 공개했다.
▲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이 백범 김구 선생 묘 앞에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하고 있다. 2001년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한 지 꼭 8년 만의 발간이다. ⓒ프레시안 |
이번에 발간된 사전은 총 3권, 30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친일문제연구총서' 가운데 '인명편'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언론인 장지연,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홍난파, 김성수 전 동아일보 사장, 현상윤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 등 유력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선정 기준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발성과 적극성, 반복성과 중복성, 지속성 여부를 고려했다"며 "친일 인사 선정에 있어서도 엄격한 증거주의 아래 객관성과 엄밀성을 편찬의 절대적 가치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박정희·장면·김성수·현상윤…유력 인사 4389명 '친일 행위' 수록
사전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기사를 인용해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할 당시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내용의 혈서를 지원서와 함께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또한 "한 명의 만주 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라며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이라고 덧붙였다. (☞관련 기사 :"박정희, 日 만주군에 '혈서' 쓰고 지원했다")
▲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내용. ⓒ뉴시스 |
사전은 또 장면 전 국무총리에 대해서는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직을 맡았던 경력을 친일 행위로 문제 삼았다. 이 단체는 매월 첫째 주를 '애국 주일'로 정해 '무운장구기원미사제'를 지내고 신사 참배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총리는 또 1938년 2월 '조선지원병제도제정축하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산하 비상시국민생활개선위원회' 위원을 맡아, 일제의 총동원령에 협력했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항일 독립투사로 알려진 언론인 장지연 역시 친일 인사로 이름을 올렸다. 사전은 장지연이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에 걸쳐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한시를 포함한 700여 편의 글을 실었다고 밝혔다. 특히, 1916년 12월 10일에는 2대 총독으로 부임한 하세가와 요시미치를 환영하는 한시를 이 신문에 싣기도 했다.
사전은 또 현상윤 고려대 초대 총장에 대해서는 1942년 <춘추> 11월호에 "정신에 있어서는 국체명징과 내선일체를 토대로 황국신민 양성에 힘을 다한다"는 글을 기고하고, 1942년 12월 6일자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황국 신민화' 교육을 위한 의무 교육 실시를 역설했다고 밝혔다.
김성수 전 동아일보 사장의 경우, 1943년 8월 <매일신보>에 징병 격려문을 기고했으며, 같은 해 11월 '대의에 죽을 때 황민됨의 책무는 크다'라는 글을 실어 "대동아 성전에 대해 제군과 반도 동포가 가지고 있는 의무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독려했다.
음악가 홍난파는 1937년 일제 식민 통치와 침략 전쟁에 협력하는 내용의 가요를 작곡하고 '일본 제국 신민으로서 본분을 다하겠다'는 글을 썼던 점, 역시 음악가인 안익태는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환상곡'을 작곡해 지휘했던 점 등이 친일 행위로 지적됐다.
그 밖에 문인 김동인·서정주·모윤숙·유치진, 무용인 최승희 등도 친일 행위가 드러났으며,독립유공자로 분류됐던 인사 20명도 친일 행위가 드러나 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신현확 전 국무총리, 최근우 전 사회당 창당준비위원장, 일본 육사 출신 이동훈 씨 등 3명은 지난해 발표된 '친일 명단'에는 포함됐으나 이번 수록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또 조사가 부족해 수록 대상에서 보류된 382명은 추가 조사를 실시한 뒤, 향후 사전을 개정·보완할 때 반영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반민특위 해산 60년 만에…"드디어 국민이 해냈다"
1994년 출간 계획을 처음 발표했던 민족문제연구소는 2001년 편찬위원회를 출범, 8년간 3000여 종의 문헌 자료를 수집·분석했다. 또 250만 명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확인·심의 작업을 거쳐 최종 수록 대상을 선정했다.
각 분야의 교수와 학자 150여 명이 편찬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했으며, 집필 위원으로 180여 명, 문헌 자료 담당 연구자로 80여 명이 투입됐다. 앞서 1999년에는 사전 편찬을 지지하는 전국 교수 1만 명의 선언이 있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4년에는 누리꾼을 중심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성금운동'이 전개 돼, 열흘 만에 목표 금액 5억 원이 전액 모금되기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애초 지난해 8월 사전을 출간할 계획이었으나 수록 대상 인사들의 유족이 제기한 이의 신청 처리, 발행금지가처분 소송 대응, 막바지 교열 작업 등 실무적인 문제로 발행이 늦어졌다고 밝혔다.
▲ 이날 보고대회에는 5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사전 발간의 기쁨을 나눴다. ⓒ프레시안 |
이날 보고대회에서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은 "드디어 해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윤 위원장은 "해방 이후 반민특위 결성 직후 이뤄졌어야 할 일을 60여 년의 긴 세월 끝에, 민족문제연구소 설립 18년 만에, 편찬위원회 출범 8년 만에 해냈다"며 "그야말로 산고와 산고 끝에 사전이 나왔음을 국민 여러분께 보고드린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이어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해지려면 우리 내부의 자기 모순과 자기 왜곡을 솔직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일개 한 정파, 정당, 정치인들이 이를 이용하려는 것에 참으로 분노하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도 "이 사전의 발간으로 한국 지배층의 윤리 의식이 바뀌기를 기대한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사전 발간을) 외면하고 예산조차 지급하지 않을 때, 앞장 서서 성금을 모으고 사전 발간을 지원해준 국민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보고대회 시작과 함께 윤경로 위원장과 임헌영 소장 등은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에 앞에 사전을 헌정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시민 500여 명 역시 사전이 편찬되기까지 8년 동안의 노력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 <친일인명사전>을 살펴보는 시민들. ⓒ프레시안 |
숙명여대, 행사 이틀 전 대관 취소 통보해…보수 단체 충돌 우려
한편, 애초 민족문제연구소는 숙명여자대학교 숙명아트센터에서 보고대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보수단체와의 충돌을 우려한 아트센터 측이 행사 이틀 전에 갑작스럽게 대관을 취소해 장소가 백범 김구 묘소로 옮겨졌다.
이날 보고대회에 앞서 국민통합국민운동본부,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 등 보수단체들은 아트센터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반대 및 민족문제연구소 해체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연구소 측이 보고대회 장소를 옮기면서 큰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편찬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일제협력단체사전과 식민지통치기구사전 등이 포함된 '친일문제연구총서'를 2015년까지 완간할 계획이다. 친일인명사전은 빠르면 이달 말 시중에서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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