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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71022182638&Section=04
유럽중심적 역사의 해체를 위하여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
<1> : "역사는 객관적으로 쓰여지지 않는다"
<2> :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은 누가 만들었나
4) 과장하거나 감추거나 왜곡시킨 세계사
서양사 체계는 어떻게 짜여졌나
이렇게 서양사는 기본적으로 근대에서의 유럽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형태로 짜여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대로까지 확장된다. 서양 사람들이 근대에 이룬 자신들의 우월성을 고대로까지 확대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은 고대부터 다른 대륙과는 무엇인가 달랐고 우월한 문화를 갖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것이 중세, 근대를 지나 현대까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서양 고대사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그리스 · 로마 문명이다. 그리스는 인간중심적이고 합리적인 문명으로 인류사를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았다고 생각한다. 철학이나 문학, 예술, 정치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고 그것이 근대 서양문명의 정신적 기초를 만들었다.
로마는 대제국을 이루고 번영하는 경제와 높은 문화수준을 이루었다. 로마는 사유재산권을 확립함으로써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고 로마법을 통해 서양에 법의 지배를 가져오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로마의 공화정도 근대 유럽의 민주정치 발전에 공헌을 했다. 기독교의 수용도 그 후 유럽 문화의 발전과 관련해 중요한 요소이다.
중세에서는 자유로운 도시의 성립이 중요하다. 그것이 근대 유럽에 정치적 자유를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을 성장시킴으로써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중세에는 기독교가 중요하나 근대에 들어와서는 세속적 합리성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먼저 14-16세기의 르네상스는, 중세의 기독교 문화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고대 문명을 재발견함으로써 근대 유럽문명의 모태를 만든 사건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것이 근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도 중요하다. 그것이 개인성의 감각을 가져다주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신교파의 하나인 칼뱅파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발전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정신적 기초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발전은 유럽인들의 창의성, 합리적인 태도, 근검절약에 의한 자본축적과 관련하여 설명된다.
17세기의 과학혁명은 근대 과학을 발전시킨 혁명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과학의 발전과 그에 다른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근대에 와서 유럽이 다른 세계보다 우월해지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계몽사상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유럽인들을 무지와 몽매, 종교의 광신에서 벗어나게 하여 세속적이고 합리적이며 자유로운 세계관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사회를 더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형태로 조직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유럽의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 모든 것을 근대적인 형태로 재조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다. 말하자면 프랑스 혁명은 근대사로 넘어가는 분수령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기계와 동력을 결합시킴으로써 인간의 물질적 생산력을 크게 확대했고 현대의 물질문명을 이루는 기본적인 바탕을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이 모든 사건들은 전적으로 유럽인의 창의성과 노력의 산물이며 이것들에 의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찬란한 서양문명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사실의 과장, 은폐, 왜곡
위에서 말한 사건들은 서양 역사가들에게 유럽중심적 서양사나 세계사를 쓰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전략적인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설명들이 반드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 과장, 은폐,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들을 하나씩 들어 보자.
프랑스 혁명은 그 역사적 의미가 과장된 좋은 예의 하나이다. 전통적인 서양역사가들이 프랑스 혁명의 의미를 크게 부풀려 근대 세계사의 정점에 놓으나 그것은 실제의 역사 현실과는 잘 맞지 않는다.
혁명은 공화정을 수립했으나 민주주의적은 아니었고 초기부터 공포정치의 독재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혁명이 봉건적 지배계급을 일소한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토지귀족 계급은 나폴레옹 시대인 1806년 이후 다시 힘을 되찾았고 19세기 내내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은 별 관계가 없다. 혁명이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근대적 요소들도 장기적인 과정의 일부이다.
또 프랑스는 전 세계에 자유와 평등을 가져오기는커녕 1960년대까지도 저질의 식민주의를 통해 알제리, 베트남 등 식민지인의 자유를 빼앗았고 그들을 노예화했다. 프랑스혁명의 세계사적 의의를 자랑하려면 이런 부끄러운 사실들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은폐되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인종주의이다. 사람을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으로 구분하여 사람 사이의 지배와 예속을 합리화하는 이념인 인종주의는 그야말로 서양 사람들의 창조적인 발명품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비유럽세계의 식민지인을 죽이거나 노예화하고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인종주의는 독일의 유대인 학살의 밑바탕에도 깔려 있다.
이렇게 인종주의가 도덕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이념인 것을 잘 알므로 그들은 그것을 철저히 은폐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전문적인 책 외에는 잘 다루지 않는다. 서양인이 쓴 개설서에서는 뺀 경우가 많고 집어넣는 경우에도 비중을 상당히 축소시키고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서양 사람들의 생각에서 차지하는 인종주의의 큰 비중을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식민주의 문제는 왜곡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유럽중심주의적 역사가들이 식민지의 억압이나 착취 같은 명백한 부정의까지도 가능한 한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식민 지배가 식민지에 피해를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발전된 근대문화와 과학기술을 이식해 주었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다면 과거의 식민지역인 제3세계는 지금보다도 더 못한 상태에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 식민지배는 서양 식민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식민지인의 협력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식민지배의 책임을 식민지인과 나누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이 문제들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서양사의 거의 모든 주제들에 이런 요소들이 숨어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이 없나 서양사의 서술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불균형한 세계사
유럽사를 미화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비유럽을 낮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명을 치켜세움에 따라 그 상대방인 오리엔트 문명은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리스 문명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명으로, 다른 쪽은 전제적, 노예적 문명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 후 전체 역사에 걸쳐 유럽과 비유럽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된다. 유럽은 고대에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또 그리스를 잇는 헬레니즘적 문명의 의미와 비중은 축소된다. 알렉산더에 의해 그리스 문명이 오리엔트문명과 결합함으로써 고전 그리스 문명의 퇴화단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헬레니즘적 문명은 고전기에 못지않은 문화수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에 의해 계몽된 2류 문명으로 부당하게 격화된다.
중세 시대에 들어오면 유럽만이 부각되고 비잔틴 제국이나 이슬람 문명권의 비중은 축소된다. 실제로 중세시대에 이들 지역의 문화수준이 유럽보다 훨씬 높았는데도 그렇다.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전통을 물려받은 비잔틴, 이슬람, 유럽 문명 가운데 그리스와의 연결고리가 가장 약한 유럽이 그 권리를 독점적으로 주장하게 된다. 오늘날 근대 유럽문명을 그리스 문명과 직접 연결시키는 일반적인 태도는 이런 역사왜곡의 직접적 결과이다.
15세기 말 이래 유럽인들이 정복한 아메리카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던 곳같이 취급된다. 그리하여 유럽인의 발견과 정복에 의해서만 세계사 속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는 문명이 없는 야만적인 곳으로 '검은 대륙'으로 규정된다.
아시아라고 다를 것도 없다. 아시아는 오리엔탈리즘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로 야만적이고 무지몽매하고 법과 윤리, 창조성도 없는 정체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쓴 세계사라는 것이 얼마나 뒤틀리고 불균형한 것이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서양사 지식은 서양 사람의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서양 세계의 역사인식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세계사의 인식체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서양 역사학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양사 나아가 세계사의 많은 부분이 이렇게 서양학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5) 서양 역사학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서야
유럽중심적 역사의 해체를 위하여
1990년대에 들어와 유럽중심적으로 씌어진 세계사를 해체하고 세계사의 바른 모습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점차 본격화하며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잘못 알려지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아시아의 모습을 고치는 일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로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작업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단일 중심의 세계사를 다중심주의로 대치하는 작업이다. 다른 말로 하면 유럽을 세계사의 중심 지위에서 밀어내어 다른 지역과 역사적 비중에서 비슷한 지역사로 낮추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이전에는 유럽이 세계사의 중심이 아니었으므로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런 작업은 세계사를 바르게 쓰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유럽중심주의적 서양사나 세계사가 엉터리로 적당 적당히 꾸며낸 그런 역사서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200년에 걸쳐 서양 역사가들이 사실들과, 그것을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들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쌓아 올린 것이다. 그러니 간단하게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해체를 위해서는 유럽중심주의적 세계사의 한 가운데를 흐르는 기본적인 생각의 틀이나 이론들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맞추어 온갖 역사적 사실들을 재해석하고 또 그것을 전체적으로 체계화해야 한다. 그러니 그 작업이 쉬울 리가 만무하다.
더구나 그 대안이 되어야 할 비서양세계의 학문 체계와 전통은 식민지 시대를 지나며 거의 무너져 버렸다. 우리 조선시대의 유교를 중심으로 한 학문전통이 흔적만 남은 채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는 비서양세계 다른 나라의 경우도 비슷하다.
사실 지금 시작되고 있는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도 대체로 제3세계 출신이기는 하나 서양학자들이 주도하고 있고, 서양 학문체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서양 세계가 아직 지적인 독립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지적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은 장기간에 걸쳐 큰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서양 학자들의 권위에 감연히 맞서야
그렇다고 이런 일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쉬운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 우선 서양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식민주의 문제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만, 이해관계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뚜렷하게 관점이 달라질 수 있는 이런 곳에서부터라도 서양학자들의 기존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리의 관점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 위에서 다른 작업들이 차츰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 당장은 서양 사람들이 해 놓은 자기반성의 수준이라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우리의 수준이 그 정도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책인 경우는 좀 나으나 개설서 같은 일반적인 서양사 책 가운데에는 이미 서양에서도 수십 년 전에 페기 처분된 이론들이 실려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이는 그 동안 우리 연구자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으나 학문에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서양사에만 한한 것은 아니다. 우리 학계 전체가 대체로 이론이나 이데올로기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또 서양학자들의 주장을 옳은 것으로 생각하는 한 그럴 필요 자체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자주적인 학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르페브르나 브로델, 홉스봄 등은 서양에서 대표적인 역사가로 평가 받는 사람들이다. 또 그들이 수준 높은 일급 학자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의 주장이 반드시 보편타당성을 갖는 것도, 옳은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의 인식이나 판단은 다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이나 이론에 지레 겁을 막고 주눅이 들 것이 아니라 감연히 맞서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그러려면 보다 열심히 공부함으로써 그들의 지적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 자신의 학문적 전통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서양학문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시대는 이제 영원한 과거로 사라져야 한다.
유럽중심적 역사의 해체를 위하여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
<1> : "역사는 객관적으로 쓰여지지 않는다"
<2> :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은 누가 만들었나
4) 과장하거나 감추거나 왜곡시킨 세계사
서양사 체계는 어떻게 짜여졌나
이렇게 서양사는 기본적으로 근대에서의 유럽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형태로 짜여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대로까지 확장된다. 서양 사람들이 근대에 이룬 자신들의 우월성을 고대로까지 확대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은 고대부터 다른 대륙과는 무엇인가 달랐고 우월한 문화를 갖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것이 중세, 근대를 지나 현대까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서양 고대사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그리스 · 로마 문명이다. 그리스는 인간중심적이고 합리적인 문명으로 인류사를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았다고 생각한다. 철학이나 문학, 예술, 정치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고 그것이 근대 서양문명의 정신적 기초를 만들었다.
로마는 대제국을 이루고 번영하는 경제와 높은 문화수준을 이루었다. 로마는 사유재산권을 확립함으로써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고 로마법을 통해 서양에 법의 지배를 가져오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로마의 공화정도 근대 유럽의 민주정치 발전에 공헌을 했다. 기독교의 수용도 그 후 유럽 문화의 발전과 관련해 중요한 요소이다.
중세에서는 자유로운 도시의 성립이 중요하다. 그것이 근대 유럽에 정치적 자유를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을 성장시킴으로써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중세에는 기독교가 중요하나 근대에 들어와서는 세속적 합리성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먼저 14-16세기의 르네상스는, 중세의 기독교 문화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고대 문명을 재발견함으로써 근대 유럽문명의 모태를 만든 사건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것이 근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도 중요하다. 그것이 개인성의 감각을 가져다주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신교파의 하나인 칼뱅파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발전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정신적 기초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발전은 유럽인들의 창의성, 합리적인 태도, 근검절약에 의한 자본축적과 관련하여 설명된다.
17세기의 과학혁명은 근대 과학을 발전시킨 혁명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과학의 발전과 그에 다른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근대에 와서 유럽이 다른 세계보다 우월해지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계몽사상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유럽인들을 무지와 몽매, 종교의 광신에서 벗어나게 하여 세속적이고 합리적이며 자유로운 세계관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사회를 더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형태로 조직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유럽의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 모든 것을 근대적인 형태로 재조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다. 말하자면 프랑스 혁명은 근대사로 넘어가는 분수령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기계와 동력을 결합시킴으로써 인간의 물질적 생산력을 크게 확대했고 현대의 물질문명을 이루는 기본적인 바탕을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이 모든 사건들은 전적으로 유럽인의 창의성과 노력의 산물이며 이것들에 의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찬란한 서양문명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사실의 과장, 은폐, 왜곡
위에서 말한 사건들은 서양 역사가들에게 유럽중심적 서양사나 세계사를 쓰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전략적인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설명들이 반드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 과장, 은폐,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들을 하나씩 들어 보자.
프랑스 혁명은 그 역사적 의미가 과장된 좋은 예의 하나이다. 전통적인 서양역사가들이 프랑스 혁명의 의미를 크게 부풀려 근대 세계사의 정점에 놓으나 그것은 실제의 역사 현실과는 잘 맞지 않는다.
혁명은 공화정을 수립했으나 민주주의적은 아니었고 초기부터 공포정치의 독재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혁명이 봉건적 지배계급을 일소한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토지귀족 계급은 나폴레옹 시대인 1806년 이후 다시 힘을 되찾았고 19세기 내내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은 별 관계가 없다. 혁명이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근대적 요소들도 장기적인 과정의 일부이다.
또 프랑스는 전 세계에 자유와 평등을 가져오기는커녕 1960년대까지도 저질의 식민주의를 통해 알제리, 베트남 등 식민지인의 자유를 빼앗았고 그들을 노예화했다. 프랑스혁명의 세계사적 의의를 자랑하려면 이런 부끄러운 사실들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은폐되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인종주의이다. 사람을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으로 구분하여 사람 사이의 지배와 예속을 합리화하는 이념인 인종주의는 그야말로 서양 사람들의 창조적인 발명품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비유럽세계의 식민지인을 죽이거나 노예화하고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인종주의는 독일의 유대인 학살의 밑바탕에도 깔려 있다.
이렇게 인종주의가 도덕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이념인 것을 잘 알므로 그들은 그것을 철저히 은폐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전문적인 책 외에는 잘 다루지 않는다. 서양인이 쓴 개설서에서는 뺀 경우가 많고 집어넣는 경우에도 비중을 상당히 축소시키고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서양 사람들의 생각에서 차지하는 인종주의의 큰 비중을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식민주의 문제는 왜곡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유럽중심주의적 역사가들이 식민지의 억압이나 착취 같은 명백한 부정의까지도 가능한 한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식민 지배가 식민지에 피해를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발전된 근대문화와 과학기술을 이식해 주었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다면 과거의 식민지역인 제3세계는 지금보다도 더 못한 상태에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 식민지배는 서양 식민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식민지인의 협력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식민지배의 책임을 식민지인과 나누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이 문제들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서양사의 거의 모든 주제들에 이런 요소들이 숨어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이 없나 서양사의 서술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불균형한 세계사
유럽사를 미화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비유럽을 낮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명을 치켜세움에 따라 그 상대방인 오리엔트 문명은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리스 문명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명으로, 다른 쪽은 전제적, 노예적 문명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 후 전체 역사에 걸쳐 유럽과 비유럽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된다. 유럽은 고대에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또 그리스를 잇는 헬레니즘적 문명의 의미와 비중은 축소된다. 알렉산더에 의해 그리스 문명이 오리엔트문명과 결합함으로써 고전 그리스 문명의 퇴화단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헬레니즘적 문명은 고전기에 못지않은 문화수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에 의해 계몽된 2류 문명으로 부당하게 격화된다.
중세 시대에 들어오면 유럽만이 부각되고 비잔틴 제국이나 이슬람 문명권의 비중은 축소된다. 실제로 중세시대에 이들 지역의 문화수준이 유럽보다 훨씬 높았는데도 그렇다.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전통을 물려받은 비잔틴, 이슬람, 유럽 문명 가운데 그리스와의 연결고리가 가장 약한 유럽이 그 권리를 독점적으로 주장하게 된다. 오늘날 근대 유럽문명을 그리스 문명과 직접 연결시키는 일반적인 태도는 이런 역사왜곡의 직접적 결과이다.
15세기 말 이래 유럽인들이 정복한 아메리카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던 곳같이 취급된다. 그리하여 유럽인의 발견과 정복에 의해서만 세계사 속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는 문명이 없는 야만적인 곳으로 '검은 대륙'으로 규정된다.
아시아라고 다를 것도 없다. 아시아는 오리엔탈리즘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로 야만적이고 무지몽매하고 법과 윤리, 창조성도 없는 정체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쓴 세계사라는 것이 얼마나 뒤틀리고 불균형한 것이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서양사 지식은 서양 사람의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서양 세계의 역사인식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세계사의 인식체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서양 역사학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양사 나아가 세계사의 많은 부분이 이렇게 서양학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5) 서양 역사학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서야
유럽중심적 역사의 해체를 위하여
1990년대에 들어와 유럽중심적으로 씌어진 세계사를 해체하고 세계사의 바른 모습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점차 본격화하며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잘못 알려지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아시아의 모습을 고치는 일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로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작업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단일 중심의 세계사를 다중심주의로 대치하는 작업이다. 다른 말로 하면 유럽을 세계사의 중심 지위에서 밀어내어 다른 지역과 역사적 비중에서 비슷한 지역사로 낮추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이전에는 유럽이 세계사의 중심이 아니었으므로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런 작업은 세계사를 바르게 쓰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유럽중심주의적 서양사나 세계사가 엉터리로 적당 적당히 꾸며낸 그런 역사서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200년에 걸쳐 서양 역사가들이 사실들과, 그것을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들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쌓아 올린 것이다. 그러니 간단하게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해체를 위해서는 유럽중심주의적 세계사의 한 가운데를 흐르는 기본적인 생각의 틀이나 이론들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맞추어 온갖 역사적 사실들을 재해석하고 또 그것을 전체적으로 체계화해야 한다. 그러니 그 작업이 쉬울 리가 만무하다.
더구나 그 대안이 되어야 할 비서양세계의 학문 체계와 전통은 식민지 시대를 지나며 거의 무너져 버렸다. 우리 조선시대의 유교를 중심으로 한 학문전통이 흔적만 남은 채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는 비서양세계 다른 나라의 경우도 비슷하다.
사실 지금 시작되고 있는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도 대체로 제3세계 출신이기는 하나 서양학자들이 주도하고 있고, 서양 학문체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서양 세계가 아직 지적인 독립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지적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은 장기간에 걸쳐 큰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서양 학자들의 권위에 감연히 맞서야
그렇다고 이런 일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쉬운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 우선 서양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식민주의 문제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만, 이해관계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뚜렷하게 관점이 달라질 수 있는 이런 곳에서부터라도 서양학자들의 기존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리의 관점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 위에서 다른 작업들이 차츰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 당장은 서양 사람들이 해 놓은 자기반성의 수준이라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우리의 수준이 그 정도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책인 경우는 좀 나으나 개설서 같은 일반적인 서양사 책 가운데에는 이미 서양에서도 수십 년 전에 페기 처분된 이론들이 실려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이는 그 동안 우리 연구자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으나 학문에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서양사에만 한한 것은 아니다. 우리 학계 전체가 대체로 이론이나 이데올로기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또 서양학자들의 주장을 옳은 것으로 생각하는 한 그럴 필요 자체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자주적인 학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르페브르나 브로델, 홉스봄 등은 서양에서 대표적인 역사가로 평가 받는 사람들이다. 또 그들이 수준 높은 일급 학자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의 주장이 반드시 보편타당성을 갖는 것도, 옳은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의 인식이나 판단은 다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이나 이론에 지레 겁을 막고 주눅이 들 것이 아니라 감연히 맞서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그러려면 보다 열심히 공부함으로써 그들의 지적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 자신의 학문적 전통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서양학문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시대는 이제 영원한 과거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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