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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2
'도깨비 없이 자라난 세대'를 위한 우리 문화론
1권을 펴낸지 불과 반 년 만에 2권을 내게 되었다. 첫 번째 책이 많은 호응을
받았기 때문에 또 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계획한 것이 두 권 분량이었다.
1권을 펴낸 후 참으로 많은 격려와 호응을 받았다. 과분한 일이었다. 한편으로
는 어깨가 무겁기도 하다. 1권을 펴낸 뒤로 강연요청이 쇄도하였는데, 우리 문화
포교사 역할을 자임했던 나로서는 가능하면 이에 응하였다. '금줄 없이 태어난
세대'들을 다수 만나면서 새삼 우리 문화의 희망을 읽은 것은 내게는 신선한 개
안이었다. 만나 본 이들의 깊은 관심과 애정에 우리 문화의 포교사로서의 깊은
책무감을 느끼곤 했다.
나는 '새로운 글쓰기'를 강조하고 싶다. 새로운 글쓰기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
는 1980년대 중반에 공단 주변을 배회하곤 했다. 늘 노동자들을 만났고, 그들과
더불어 포장마차에서 쓴 소주를 마시며 삶과 운동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당시
대학원을 이미 마친 상태였는데, 대학에서는 늘 지식의 독점적 지분만을 따지는
분위기였다. 도대체 지식이란 무엇인가? 혼자만 읽고, 끼리끼리만 암호해독을 하
듯 주고, 받고, 급기야 그 주고받음에서 소외된 보통 사람들을 '정보 사회의 낙
오자' 취급하는 것, 그것이 소위 지식인가.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은 혼자서 가는
길보다 훨씬 행복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새로운 글쓰기를 꿈꾸는 이유다.
그렇다면 새로운 글쓰기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 연암 박지원은 박제가의
<초정집> 서문에 이렇게 말했다. "예전 것을 본받은 자가 너무 옛것에만 집착하
고, 창신하는 자는 규범을 따르지 않음이 우려되니,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
면서 변화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 능히 규범을 따를 줄 안다면 오늘의 글이 예
전의 글과 같으리라." 구한말의 문사 이건창은 "배우는 데 쉬운 것으로 하는 것
은 도로 들어가는 기틀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쉽고 새롭되 규범과 어우러지
는 것. 그런 글쓰기야말로 글쓰는 이들이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 게 아니던가. 나
는 그 이상을 향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싶다.
여기서 다루는 우리 문화는 너무나 흔해빠져서 막상 아무도 챙기지 않는 것들
이다. 남근과 여근, 금줄, 미륵반가사유상, 흰옷, 개고기, 숫자 3, 돌하르방, 솟대,
서낭당, 유랑예인, 배꼽, 동성동본 불혼, 똥돼지, 매향비, 풍물굿, 무당, 두레, 구
들, 바위그림, 생명나무, 장례와 제사, 모정과 누정, 장승, 욕설, 도깨비, 여신과
남신......
하지만 나는 확신을 갖고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문화를 내세우고자 한다.
왜냐하면 늘 우리 곁에 있기에 눈여겨보지 않던 문화야말로 우리 문화의 진정한
속살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엽에 우리 나라를 찾아온 외국인들은 된장 냄새를 맡고서 '썩은 냄
새'라고 했다. 장승은 우상이라고 하였고, 무당은 무조건 미신이라고 하였으며,
풍물굿은 시끄럽다고, 당수나무는 베어버리자는 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
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나라에 치즈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그 냄새 때문에 차
마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었는가.
이미 나는 1권에서 우리 문화의 전략화를 강력히 제기한 바 있다. 식혜가 깡
통을 만나고, 구들이 겹구들을 만나고, 된장이 항암전선에 투입되고, 도깨비가
21세기 컴퓨터 그래픽으로 되살아나고......
또한 2권에서도 전통 시대의 가부장문화에 대한 반대한다는 견해를 단호하게
표명하였다. 우리들은 가부장문화의 부산물인 '내숭주의'에 온통 빠져 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오로지 정치, 경제, 예절 따위에만 빠져서 성관계조차 하지 않았
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다. 우리들이 잘못 배워 온, 유교적 엄숙주의를 21세기에
까지 강요하려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는데 이 책이 작은 무기로 쓰여지길 기
대한다.
서구열강의 침략 앞에서 동양 제국의 뜻있는 이들은 '동도서기'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패였다.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동도서기를 적용해야 할 듯
하지만, 나는 도리어 이 시점에서 동도동기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당수나무를 하나의 예로 들어보자. 우리들의 숲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강간당하듯 처참하게 몰살당하였다. 무자비한 개발과 발전, 근대화, 현대화
따위로 우리가 얻은 게 무언지 새삼 반성해야 할 때다.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
전환, 동도동기를 통한 우리 문화의 새로운 전략 수립, 그것이 절실한 이유는 거
기에 있다.
나의 우리 문화 탐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10여권의
저서를 냈다. 적지 않은 분량이기는 하지만, 시작이란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우리 문화라는 알려지지 않은 전인미답의 숲길은 아직도 먼 느낌이다.
사람들이 자주 나의 공부와 집필 방식에 관하여 물어온다. 그러나 나 자신은
막상 들려줄 말이 없다. 나는 참으로 요령 없이 공부한다. 어떤 이론공부를 하고
이를 적용시키는 식의 탁상물림 방식은 애초부터 체질에 맞지 않는다. 나는 무
조건 현장으로 떠난다. 삶과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농기구를 줄자로 재고,
함께 소주를 마시고, 돌아와서는 부지런히 카드를 정리하고...... 늘상 그런 식이
다. 본업이 학자이니 책을 등한시할 리야 없지만 나의 작업은 늘상 현장에서 거
의 이루어진다.
2권을 마무리하면서 단단히 결심한 게 하나 있다. 우리 문화를 공부하고자 하
는 모든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혼자 가는 길보다는
여럿이 가는 길이 낫기에, 우리 문화 길잡이들이 길목에서 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 글을 쓰기까지 도움을 아끼지 않은 분들의 노고를 어찌 다 잊겠는가, 학계
의 연구성과에 기초하였음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신문연재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일찍이 표명해 준 한겨레신문사 문화부, 책이 간행되기까지
온갖 것을 챙겨준 출판부에 감사할 뿐이다. 그 밖에도 많은 분들의 애정에 대해
어찌 필설로 다 쓸 수 있으리오.
또 하나를 마무리지었으니 이제 늘 꿈꾸던 현장으로 떠나야겠다. 그것만이 늘
상 안일해지기 쉬운 마음을 경계하는 길이 아닐까.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진심
으로 감사 드린다. 1996년 12월 초순 장안벌에서 주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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