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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1
지은이: 주강현
출판사: 한겨레 신문사
'금줄 없이 태어난 세대'를 위한 우리 문화론
"식혜는 우리 식생활문화가 거둔 승리이자 희망이다." 최근 나는 다소 엉둥한
화두를 들고 열심히 식혜 선전을 한다. 식혜회사에서 판촉비를 받아서 그런 게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침투한 가공할 만한 콜라의 벽을 허문 게 바로 가장 한국
적인 식혜였기 때문이다. 새삼 '가장 민족적인 문화가 가장 세계적인 문화'라는
고전적 명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식혜는 '깡통'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는 순
간, '성공'하였다. 민족음식의 시대에 맞춘 '변법자강책'이자 '법고창신'이지 않은
가. 우리 것, 우리 문화를 갈고 닦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고 있다.
문화란 무엇인가. 우리 문화란 무엇인가.
최근에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자각이 새롭게 일어나고 있기에 나는 이런
원론적인 의문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구술문화와 문자 문화, 무형문화와 유
형문화, 구전역사와 문헌역사... .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문자 기록 문헌의 명료한
사실에 우선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씌어지지 않은 문화'의 진실을 모르고서야
어찌 문화의 전체상을 볼 수 있겠는가. 고려 청자의 예술적 위대성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문화의 저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금줄, 숫자 3, 서낭당, 흰
옷 같은 원초적이며 토속적인 문화의 비밀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우리 문화의
씨줄과 날줄도 온전하게 자리잡지 않겠는가.
'씌어지지 않은 문화'를 제대로 밝힐 때 '씌어진 문화'의 올바른 상이 보인다.
반대로 '씌어진 문화'의 이해를 통해 '씌어지지 않은 문화'의 중요성도 돋보이는
법이다. 뛰어난 농서를 쓰신 어느 선인께서는 "늙은 농부의 말을 간추린 농법이
농사 짓는 집에서는 제일"이라 하셨다. 나는 이 지극히 평범한 진실을 가지고 우
리 문화를 점검하고 싶었다. 조선왕조실록의 비밀보다는 금줄의 비밀을 풀고자
한 것이다. 시각을 조금만 바꾸어보면 '씌어지지 않은 문화'야 말로 가장 대중적
으로 당대에 유행하던 문화이지 않던가.
그렇다고 '모든 과거는 훌륭하다'는 식의 복고주의나 '우리 것은 모두 아름답
다'는 식의 쇼비니즘은 마땅히 경계를 요한다. 마찬가지로 자기 것은 버리고 세
계적인 것만 강조하는 해체주의 역시 문제다. 문화는 시대마다 선택적이고 가변
적이며, 장기적인 것과 단기적인 것이 공존하는 복잡한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통한 문화접촉으로 한 나라의 문화가 뿌리째 뒤집힐 수도 있다. 이렇게
문화는 날줄과 씨줄이 복잡하게 얽힌 일종의 그물과도 같은 것이기에 순수한 자
기 문화만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는 끊임없이 변하게 마련이다. 우리 나라만 보더라도 문화의 변화 파동은
끊이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 고추가 들어오자 김치의 제조방식은 얼마나 바뀌었
는가! 어쩌면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도 그런 변화의 예고는 끊임없이 존재한
다. 불과 100년밖에 안 된 서구문화의 유입과 그에 따른 생활양식의 변화는 쌀밥
보다 피자를 즐기는 우리네 모습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지금 거센 서풍을 막을 동풍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 1세기 동안 우리는 지나치게 서풍에 주눅들었다. 서구우월주의의 관점에
서 재단한 '문명과 야만'이란 얼마나 그릇된 편견인가. '똥은 깨끗하게 치워야 한
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서구적 사고와 문명관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 위생적이
라는 수세식 변소가 환경오염의 주범이고 우리 전래의 똥돼지를 고사시킨 원인
이었다. 개고기는 또 어떤가. 개가 애완동물이라는 사고 역시 지극히 서구적인
것이 아니던가. '10리만 떨어져도 물과 바람이 다르다'는데, 남의 잣대로 우리 문
화를 가늠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동풍, 그것도 단순한 동풍이 아니라 바로
민족의 내면에 끈끈하게 이어져온 동풍으로 '문화의 신토불이론'을 세워야 할 때
다. "나는 본래 조선 사람, 조선시를 즐겨 쓰리"라고 했던 정다산의 '조선시 선언'
을 되새겨야 할 일이다.
21세기 새로운 문화파동의 바람이 부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문화의 테러
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우리 문화에 대한 근거 없는 자존심 세우디고, 우리 문화
에 대한 불필요한 자기 비하도 모두 '테러'의 대상이다.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
나름의 생활문화를 가졌고 그에 바탕한 고급문화도 지녔다. 따라서 그 문화가 어
떤 이유에서 낮게 평가될 필요도, 과장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자기 것을
갈고 지키겠다면 그로써 족한 일이다. 상대적 우월감이나 상대적 열등감은 모두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세계적인 차원의 문화교류를 가로막을 뿐이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우리 민족의 의식과 생활 속에 가장 원초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문화현상 15가지를 골라 이 책을 썼다. 원래 한겨레신문에 반년간 연재했던
글을 대폭 손질하고 항목을 추가하여 가급적이면 딱딱하지 않게, 재미있게 꾸미
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 글은 그동안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시베리아에서 오키나
와에 이르기까지 내가 발로 뛴 20년의 요약판이라 할 수 있다. 솟대에서 성신앙
까지 우리의 생활 곳곳에 남아 있으되 잘 모르는 것이나 지금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신앙, 수관념, 놀이, 옷과 음식 등 민족생활사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것을
골라 그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다소 지나치게 말하자면 '금줄없이 태어난 세대'를 위한
우리 문화의 독본을 꿈꾸었다. 그들이 21세기 한국을 이끌 주역이라면 마땅히 이
런 정도의 우리 문화에 대한 소양은 갖추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가급
적이면 젊은이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한 글쓰기를 시도했지만 의도만큼 소기의
성과를 이룬지는 모르겠다.
나는 우리 시대의 문화상징으로 조선 후기의 삼두매를 제시하고 싶다. 삼두매
의 힘찬 날개짓은 문화식민주의에 취해 있는 우리의 의식을 깨워줄 것이다.
이 글을 쓰기까지 도움을 아끼지 않은 분들의 노고를 어찌 다 잊겠는가. 그 분
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남모르게 우리 문화를 가꾸느라 애쓰는 이름 모를 '우
리 문화의 지킴이'들께 이 책을 바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과
질책을 바란다.
1996년 5월 북악을 바라보며 주강현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2
지은이 : 주강현
출판사 : 한겨레신문사
'도깨비 없이 자라난 세대'를 위한 우리 문화론
1권을 펴낸지 불과 반 년 만에 2권을 내게 되었다. 첫 번째 책이 많은 호응을
받았기 때문에 또 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계획한 것이 두 권 분량이었다.
1권을 펴낸 후 참으로 많은 격려와 호응을 받았다. 과분한 일이었다. 한편으로
는 어깨가 무겁기도 하다. 1권을 펴낸 뒤로 강연요청이 쇄도하였는데, 우리 문화
포교사 역할을 자임했던 나로서는 가능하면 이에 응하였다. '금줄 없이 태어난
세대'들을 다수 만나면서 새삼 우리 문화의 희망을 읽은 것은 내게는 신선한 개
안이었다. 만나 본 이들의 깊은 관심과 애정에 우리 문화의 포교사로서의 깊은
책무감을 느끼곤 했다.
나는 '새로운 글쓰기'를 강조하고 싶다. 새로운 글쓰기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
는 1980년대 중반에 공단 주변을 배회하곤 했다. 늘 노동자들을 만났고, 그들과
더불어 포장마차에서 쓴 소주를 마시며 삶과 운동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당시
대학원을 이미 마친 상태였는데, 대학에서는 늘 지식의 독점적 지분만을 따지는
분위기였다. 도대체 지식이란 무엇인가? 혼자만 읽고, 끼리끼리만 암호해독을 하
듯 주고, 받고, 급기야 그 주고받음에서 소외된 보통 사람들을 '정보 사회의 낙
오자' 취급하는 것, 그것이 소위 지식인가.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은 혼자서 가는
길보다 훨씬 행복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새로운 글쓰기를 꿈꾸는 이유다.
그렇다면 새로운 글쓰기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 연암 박지원은 박제가의
<초정집> 서문에 이렇게 말했다. "예전 것을 본받은 자가 너무 옛것에만 집착하
고, 창신하는 자는 규범을 따르지 않음이 우려되니,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
면서 변화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 능히 규범을 따를 줄 안다면 오늘의 글이 예
전의 글과 같으리라." 구한말의 문사 이건창은 "배우는 데 쉬운 것으로 하는 것
은 도로 들어가는 기틀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쉽고 새롭되 규범과 어우러지
는 것. 그런 글쓰기야말로 글쓰는 이들이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 게 아니던가. 나
는 그 이상을 향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싶다.
여기서 다루는 우리 문화는 너무나 흔해빠져서 막상 아무도 챙기지 않는 것들
이다. 남근과 여근, 금줄, 미륵반가사유상, 흰옷, 개고기, 숫자 3, 돌하르방, 솟대,
서낭당, 유랑예인, 배꼽, 동성동본 불혼, 똥돼지, 매향비, 풍물굿, 무당, 두레, 구
들, 바위그림, 생명나무, 장례와 제사, 모정과 누정, 장승, 욕설, 도깨비, 여신과
남신......
하지만 나는 확신을 갖고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문화를 내세우고자 한다.
왜냐하면 늘 우리 곁에 있기에 눈여겨보지 않던 문화야말로 우리 문화의 진정한
속살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엽에 우리 나라를 찾아온 외국인들은 된장 냄새를 맡고서 '썩은 냄
새'라고 했다. 장승은 우상이라고 하였고, 무당은 무조건 미신이라고 하였으며,
풍물굿은 시끄럽다고, 당수나무는 베어버리자는 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
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나라에 치즈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그 냄새 때문에 차
마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었는가.
이미 나는 1권에서 우리 문화의 전략화를 강력히 제기한 바 있다. 식혜가 깡
통을 만나고, 구들이 겹구들을 만나고, 된장이 항암전선에 투입되고, 도깨비가
21세기 컴퓨터 그래픽으로 되살아나고......
또한 2권에서도 전통 시대의 가부장문화에 대한 반대한다는 견해를 단호하게
표명하였다. 우리들은 가부장문화의 부산물인 '내숭주의'에 온통 빠져 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오로지 정치, 경제, 예절 따위에만 빠져서 성관계조차 하지 않았
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다. 우리들이 잘못 배워 온, 유교적 엄숙주의를 21세기에
까지 강요하려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는데 이 책이 작은 무기로 쓰여지길 기
대한다.
서구열강의 침략 앞에서 동양 제국의 뜻있는 이들은 '동도서기'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패였다.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동도서기를 적용해야 할 듯
하지만, 나는 도리어 이 시점에서 동도동기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당수나무를 하나의 예로 들어보자. 우리들의 숲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강간당하듯 처참하게 몰살당하였다. 무자비한 개발과 발전, 근대화, 현대화
따위로 우리가 얻은 게 무언지 새삼 반성해야 할 때다.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
전환, 동도동기를 통한 우리 문화의 새로운 전략 수립, 그것이 절실한 이유는 거
기에 있다.
나의 우리 문화 탐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10여권의
저서를 냈다. 적지 않은 분량이기는 하지만, 시작이란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우리 문화라는 알려지지 않은 전인미답의 숲길은 아직도 먼 느낌이다.
사람들이 자주 나의 공부와 집필 방식에 관하여 물어온다. 그러나 나 자신은
막상 들려줄 말이 없다. 나는 참으로 요령 없이 공부한다. 어떤 이론공부를 하고
이를 적용시키는 식의 탁상물림 방식은 애초부터 체질에 맞지 않는다. 나는 무
조건 현장으로 떠난다. 삶과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농기구를 줄자로 재고,
함께 소주를 마시고, 돌아와서는 부지런히 카드를 정리하고...... 늘상 그런 식이
다. 본업이 학자이니 책을 등한시할 리야 없지만 나의 작업은 늘상 현장에서 거
의 이루어진다.
2권을 마무리하면서 단단히 결심한 게 하나 있다. 우리 문화를 공부하고자 하
는 모든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혼자 가는 길보다는
여럿이 가는 길이 낫기에, 우리 문화 길잡이들이 길목에서 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 글을 쓰기까지 도움을 아끼지 않은 분들의 노고를 어찌 다 잊겠는가, 학계
의 연구성과에 기초하였음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신문연재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일찍이 표명해 준 한겨레신문사 문화부, 책이 간행되기까지
온갖 것을 챙겨준 출판부에 감사할 뿐이다. 그 밖에도 많은 분들의 애정에 대해
어찌 필설로 다 쓸 수 있으리오.
또 하나를 마무리지었으니 이제 늘 꿈꾸던 현장으로 떠나야겠다. 그것만이 늘
상 안일해지기 쉬운 마음을 경계하는 길이 아닐까.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진심
으로 감사 드린다.
1996년 12월 초순 장안벌에서 주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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