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 이야기 - 이훈종
마마! 이 나라는 망했사옵니다
조선조 중엽에 오윤겸이라고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선조 15년(1582년)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올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다 겪고, 왕의 신임을 받아 영의정에까지 오른 분으로, 인조 14년(1636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당시 조선에선 드물게 78세까지 장수한 분이다.
그분이 인조반정을 겪고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을때의 일화다. 이조는 문관직의 인사발령을 맡은 관청인데 그 책임자를 자칫 잘못 뽑아 앉히다 보면, 어떤 지저분한 짓을 할는지 모르기 때문에, 당대에 가장 강직하고 덕망있는 사람이라야 그 자리에 앉고 또 그래야 해낼 수 있는 중대한 자리였다. 더구나 주인공이 이조판서가 된 것은, 광해군 때 국정이 극도로 문란하여 나랏일이 썩을대로 썩어 개탄할 정도에 이르렀을 때, 신흥세력이 일어나 구 왕권을 둘러엎은 이른바 인조반정의 직후라, 청신한 공기를 불어넣어야겠다는 의욕이 팽배하였던 때라 그에 대한 기대도 자못 컸다. 이리하여 제1차로 인사를 맡은 병조의 도묵과 함께 상감의 어전에서 합석해 고수하는 정사를 치르니, 이것을 친임도정이라 했는데, 이 자리에서 있은 일이다.
그해 과거에 합격해서, 처음으로 직장을 배정할 인원을 열거한 가운데 오씨 성을 가진 사람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위에서 물으시었다.
“응? 오가 성 가진 이가 있네, 경하고는 어떻게 되오? “신의 집 조상 제사 받드는 사람이옵니다.” “그래?”
그러고는 상감께서 그 사람 이름에다 낙점을 찍으셨다. 몇 사람 후보자 가운데 가장 적합하니 이 사람으로 발령내리는 마지막 결정이다. 전국에 배치되는 문무관의 고수를 마치자, 우에서는 그동안 이것 꾸미느라 수고했다는 뜻으로 어찬을 내리셨다.
“수고들 했으니 저녁들 자시고 나가도록 하오.”
물론 군신 관계가 엄한 터니, 같은 방 안에서가 아니라, 아마도 상감은 온돌에 계시고, 이조와 병조 양 판서는 대청에서 각각 상을 받았겠는데, 다담상이니 반주로 술도 몇 잔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오 판서는 술이 약했든지 아니면 너무나 감격해 그랬든지, 술기운으로 얼굴이 붉쾌해지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으흐흐흐, 마마! 이 나라는 망했사옵니다. 신은 도목을 꾸미는 막중한 자리에 있으면서, 망에 오른 사람 중에 특정인물을 신의 종손이라고 지적하였삽고, 우에서는 또 신의 낯을 보아 그 사람으로 낙점을 내리셨으니, 이렇게 상하가 모두 사정에 얽매어 내린대서야, 이 나라 꼴이 앞으로 어떻게 되겠사옵니까? 어허허엉...”
그냥 통곡으로 이어졌으니 이런 변이 있나? 그래도 젊으신 상감은 그의 무례를 꾸짖지 않고 좋은 낯으로 대하셨더라고 기록에는 나와 있다.
사사로운 연줄로 사람 잘못 써서 일을 그릇친 예는, 오 판서와 같은 때 같은 동지인 김류보다 더한 이가 없다. 병자호란을 당했을 때, 피난처로 잡은 강화도의 방위책임을 뉘게 맡기면 되겠느냐는 물음에, 서슴없이 자기 아들 경징을 친거하였고, 젊은 녀석이 웬 술은 그리 먹었든지, 강화 함락의 실책은 전적으로 그의 잘못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비 생전에 형받아 죽었으니 집안 꼴은 무엇이고, 온 나라안이 치러야 했던 고난은 또 어떠했던가? 사사로운 연줄로 사람을 잘못 써서 일을 그르친 예는 역사에 수없이 나오지만 반면 흥선대원군의 이런 일화도 있다.
아들을 임금으로 들여앉혀 국정의 실권을 거머쥐자, 이경하에게 훈련대장과 좌우 포도대장을 겸해서 내어맡겼는데, 이경하는 발령을 받는 자리에서 잘라 말했다.
“소인이 그 자리를 맡은 이상, 대감의 청탁이라도 받지 않겠소이다.”
그랬더니 대원군은 그 가스름한 눈에서 빛을 뿜으며 호통을 쳤다.
“이 사람 좀 보게? 그러라고 자네에게 맡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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