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 이야기 - 이훈종
산신령의 노여움을 풀어야
옛날에 지방관이 탐욕을 부리거나 실수가 있으면, 백성이 산에 올라가 큰소리로 욕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나 해야 시쳇말로 스트레스가 풀렸던 모양이다. 원주시에서 서울 쪽으로 가까이 안창이라는 곳이 있는데, 고려 때 굉장히 큰 규모의 절이 있었던 곳이다. 거기서 서울로 오자면 약간 후미진 곳에 묘한 이름을 가진 바위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욕바위. 앞에서 보면 오똑하게 높이 솟았는데, 뒤는 등이져서 그대로 밋밋하게 산으로 연해 있다. 원주서 벼슬 살았던 이는 물론이요, 그 방향 고을에서 원 노릇을 하였던 이라면, 서울로 돌아갈 때에 반드시 이 목을 거쳐서 가야 하는데, 이자가 임지에 내려와서 못된 짓을 많이 하였다면, 그 피해를 입은 사람이 관원의 행차가 지날 때, 그 바위위에 올라서서 낱낱이 조목을 들어서 욕을 퍼부었더라고 한다. 물론 끝에 가서는 갖은 악담을 늘어놓았을 것이고... 그것을 듣고 원님이 화가 나서 `저놈 잡아오라.` 고 소리치면, 쫓아갈 신명도 안났을 것이고, 어쩌지 못해 쫓아 간대도 밑의 사람이 도달하기 전에 등성이를 타고 뺑소니치면 그만이다. 본래 욕이란 것은 남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 주면 되는 것이고, 악담은 뒤끝이 좋지 않으라고 잘못되기를 비는, 말하자면 일종의 저주다. 그래서 남의 잘못을 욕할지라도 악담은 하지 말라고 일러오는데,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이라면 어떻게 욕만 하고 말 것인가? 자자손손이 어떻게 되라는 둥 갖은 악담을 늘어놓았을 것이니, 입담좋은 사람이 그 몫을 삯 받고 다니며 하는 이도 있었을지 모른다.
정혁선이라는 분이 청주목사로 내려갔는데, 밤에 어느 놈이 산에 올라가서 걸차게 욕을 해댄다. 물론 새로 도임해 갔으니, 자신에게 돌아올 욕은 아니었겠지만 속이 상한다. 그것이 여러 날 계속되기에 그 고장 출신의 이속을 불렀다. `사람이 그럴 리는 없고, 아무래도 우암산 산신이 덧나서 그런 모양이니, 집집마다 10문씩만 거둬서 굿을 하든지 제사를 지내 주도록 하라.` 분부받은 아전 생각에, 산신이 그런게 아니라고 했다간 그놈을 잡아 들이라고 할 판이라, 구역을 갈라 분담해서 돈을 거두고 하라는 대로 기도행위를 하여서 며칠은 그냥 조용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또 그놈이 욕질을 한다. 고요한 밤하늘에 욕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니 멀리까지 들렸을 것이고, 그 중의 몇몇은 아무개 놈의 짓이 틀림없다는 지목도 갔을 것이다. 원님은 또 담당자를 불렀다. `산신령이 단단히 노여운 모양이다. 일전의 그것 가지고는 심정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니, 이번엔 갑절씩 거둬서 앞서보다 더 성대하게 치르도록 해라. 얻어먹을 만큼 먹어야 가라앉을 모양이로구나.` 없는 중에 생돈으로 추렴을 내면서 백성들의 원망은 원님보다도 밤중에 소리지른 놈에게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굿판을 차린 뒤로 신령님의 노여움은 식어졌고 원님은 빙싯이 웃었다. `싱거운 산신도 다 있지. 좀더 보챘더라면 더 얻어먹는 것을....` 한가지를 보면 열가질 안다고, 이만한 배짱이라면, 아마 공사도 변변하게 잘 처리했을 것이다. 섭섭하게도 그의 다른 행적이나 생존기간에 대해서는 달리 나온데가 없다.
이것은 딴 이야기지만 한 곳을 감사의 행차가 지나가는데, 길옆 정자나무 아래 덕이 진 곳에 건장한 청년이 조골조골하게 참혹하도록 늙은 할머니 하나를 앉혀서 부축을 하고 서 있다. `저건 어떠한 백성인고?` 그 고장의 연세높은 집장이 앞으로 다가서며 여쭙는다. `이 골짜기 안 20리 쯤에 사는 백성이온대, 어미 말이 `나라님 거동하시는 행차가 거룩하다더구만도 서울을 못 가니 구경할 길이 없고, 감사님 영내 순찰하시는 행차 또한 근감하다던데 그거라도 한번 구경하였으면...` 하고 입버릇처럼 소원해 왔건만 살기에 바빠 이뤄드리지 못했다가, 보시다시피 기력이 아주 쇠해 더 지탱하기 어렵게 돼서, 이번 기회에 사또 행차를 보여드리려고 먼길을 업고 와 구경시켜 드리고 있는 것이랍니다.` 감사는 그의 효성에 감동해 누구 다른 사람에게 붙들어 드리라 하고, 그 효성스런 청년을 앞으로 불렀다. 그리곤 등을 투덕거리고 껄그러운 손도 만지며 무수히 칭찬하고 행리 중에서 비단 두 필을 꺼내 상으로 주고 그곳을 떠났다. 감사라는 직책이 본시 각 고을의 직책을 살피며 돌아다니는 것이라, 그 행보에 열 고을을 두루 돌아보고, 이제 돌아오는 길인데 앞서 그곳에서 벌어졌던 것과 똑같이 늙은 할머니를 젊은이가 부축하고 서 있는 것이다. 행차를 멈추고 까닭을 물으니 그때 그 집강이 와서 고한다. `먼젓번 상금을 내리셨던 효자집 옆에 사는 놈이온데, 평소에 어미에게 심하게 굴어 불효로 소문난 녀석이, 상 타 먹을 욕심에 어미가 싫다고 싫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업고 와 구경시키고 있는 것이옵니다.` `그랴?` 일러바친 사람은 못된 놈 볼기 몇 대 얻어맞게 하자던 것인데, 감사는 시침 뚝 떼고 청년을 불러서 전과 똑같이 상급을 주고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다음부터 그곳 관청에서 사령이 나오면, 두 사람 효자를 똑같이 찾아보고 인사를 드렸다.
`어떻습니까? 어머님 봉양하시기에 어려움은 없으신지 알아오라는 분부십니다.`
하 세우 인사를 오는 때문에 불효자는 저도 모르게 진짜 효자가 되어 버렸다는 그런 이야기다. 때려줘서 혼내느니 칭찬해서 효자 만드는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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