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 이야기 - 이훈종
옳은 사랑은 반드시 이뤄지니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것은 짝사랑이어야 된다. 주고 받는 것이라면 그것은 상거래지, 어떻게 신성한 사랑의 범주에 넣어서 말할 수 있겠는가? 과거에 이름난 사랑의 예를 들어보자. 나라가 망하려고 할 때 이름있는 애국자는 모두가 스스로의 목숨을 바쳤지만, 그들은 거의가 나라의 은혜를 풍족하게 받은 이들이 아니다. 독립투사 중 윤봉길 의사같은 이는 나라 잃은 슬픔을 깊이 모른다. 뼈에 사무치는 망국의 설움도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을 정도의 연배가 아닌가? 이봉창 열사도 왜놈 사회에 섞여 살아 조선말을 거의 잊어버린 상태에서 애국단에 뛰어들었다. 사랑이란 주는 것, 그러지 아니하고는 못 배기겠는 불덩이같은 그것이라야 한다.
각설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없이 사계절의 경치 좋기로야 우리나라 동해안을 제쳐놓고는 얘기가 안된다. 거기에 전해 오는 얘기라면서 <동국여지승람>에 소개돼 있는데, 따분하게도 시대와 주인공의 이름이 전혀 알려져 있질 않다. 이야기인즉슨, 요새로 치면 고등고시 준비를 위해 한 젊은이가 강릉땅에 와서 묵었다. 그곳 특유의 훤칠하게 자라 줄지어 선 솔밭 사이로 하얀 모래를 밞아 걸으면 싸악싸악 소리가 나고 한편으로는 깁처럼 펼쳐진 푸른 바다가 백설같은 파도를 육지로 향해 펼쳐보인다. 울창한 숲 안쪽으론 거의 기복없이 들판이 열리고, 병풍처럼 막아선 태백산맥은 특히 해 떨어지는 광경이 일품이다. 그곳 지형의 특징으로 솔밭 안쪽으로는 거울같은 호수가 열리고, 그 앞으로 따라가며 솔밭이 이어지는데 솔밭을 뒤로 하고 연못을 향해 오손도손 부락은 형성되며, 생활이 안정된 고장이라 기와집도 심심치 않게 섞여 있다. 젊은이는 그중 한 집에 처소를 정하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사나이로 세상에 났으면 과거를 거쳐 입신출세하여 부모님까지 후세에 빛나게 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하루, 청년이 창을 열고 하염없이 연못에 떠도는 흰구름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 저런?” 늘씬하게 잘 생긴 처녀 하나가 그릇을 들고 솔밭을 걸어서 지나와 물가 펑퍼짐하게 생긴 자연석에 앉아 그릇의 밥을 집어서 던져 줄 적마다 잉어들이 좋아라고 달려들어 받아 먹는다. 그러기를 한동안 하더니 처녀는 일어서서 돌아가는데 어엿한 그 태도, 그 몸매, 어쩌다 옷자락을 고치노라 고개를 돌리는데 오! 그 얼굴! 처녀가 나타나 전일과 똑같이 고기떼에게 밥을 주고... 이튿날도 또 그 다음날도 청년은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러다가 결심을 하였다. 있는 글재주를 다해 편지를 썼다.
“첫눈에 반해 어떨 줄을 모르겠으니 무슨 도리를 차려야겠소이다.”
처녀가 나타나기 전에 늘 앉는 자리에 조약돌로 눌러놓고 그가 다녀간 뒤 나아가 보니 쪽지가 안 보인다. 의젓도 하여라! 남이 알세라 눈에 안뜨이게 슬그머니 치마폭에 싸가져 간 것이겠지. 이튿날 처녀가 다녀간 뒤에 나아가 보니 자기가 했던대로 쪽지가 놓여 있다. 가지고 돌아와 허겁지겁 읽어보니
“유능한 수재가 와 계시다는 것을 일찍 들어 알고 있사온대, 이만짝 사람을 그쯤 여겨 주시니 고맙기 그지 없사오나 한낱 아녀자에 구애되어 자칫 대장부 앞날에 장애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뜻대로 과거에 오르시면 부모님의 명을 받들어 쫓으오리니.” “그 말씀 고맙습니다. 소저의 높으신 뜻을 따라 떠나가오니 부디 저버리지 말아 주시길...”
돌 위에 글을 남기고 청년은 홀홀히 돌아와 자택에서 공부에 열중하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청년은 집을 나서서 장터 구경을 갔다.
“원! 저렇게 큰 잉어가?”
청년은 그 생선을 사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손수 칼을 들어 비늘을 긁고 배를 갈랐다. 효심 많은 그인지라 손수 조리하여 부모님상에 올리려는 정성에서다. 그런데 별일 도 다 있지. 고기 뱃속에서 비단 쪽에 쓴 글이 나왔다.
“당신께서 떠나신 뒤 부모님이 서둘러 다른 곳으로 혼인을 정해 아무 날로 날짜까지 받았으니 이를 어찌하오리까? 나에게 여러해 밥 얻어먹은 물고기난 내 마음을 알아서 전하여 줄지...”
청년은 그 편지를 들고 부모님께 들어가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부모님도 그저 놀랄 밖에, 고기 뱃속을 통해 편지가 오다니?
“오냐, 가거라?”
청년은 집에 기르던 천리마를 끌어내 타고 네 굽을 모아 달렸다. 말의 전신이 땀으로 젖어 숨을 허덕이며 달려 들었을 때 웬 놈팽이 하나가 하인의 팔밀이를 받으며 문간을 들어서고 있다.
“잠깐만!”
청년은 곧장 안마당으로 뛰어 들며 두 팔을 벌려 의식의 진행을 막고 고기 뱃속에서 나온 편지를 드리며 일장 연설을 하였다. 색시 집에서도 이런 기이한 일은 듣던중 처음이라. 처녀가 딱한 사정을 써서 물엔 던진 것을 대장잉어가 집어 삼키고 자진하여 어부의 낚시를 물었는데, 워낙 큰 잉어라 좋은 값을 받으려 서울로 가져가고, 두 사람의 티없는 사랑 사연에 하늘이 감동하여, 그것은 청년의 가정으로 들어간 것이다.
색시 집에서는 정했던 신랑을 잘 일러서 보내고 둘이는 정식으로 예를 일러 청천백일하에 떳떳한 부부가 되어 대망의 입신 출세를 뜻대로 하고 해로하며 잘 살았던 것이다. 그들의 유적이 지금 강릉땅에 양어지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데, 연전에 그곳 향토사학자에게 들으니 물이 말라 버렸다는 얘기였다. 우리나라에 번안 소개되어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이로다.”라는 주제가로 유명했던 작품의 원작은 일본의 `곤지끼야사`라는 것이었고, 그들의 연애무대는 애당초 동경에서 가까운 아타미라고 하는 관광지 해변가다. 그곳에 있는 노송 한 그루를 주인공 이름을 따 `오미야마쓰`라 하여 보호하고 있는데 한마디 제안이 있다. 강릉의 양어지와 그 주변을 조경하여, 진정한 연애의 성지로 개발하고 이렇게 선전하시라.
“옳은 사랑끼리 여기 와 서약하면 반드시 이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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