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 이야기 - 이훈종
거 무슨 치료법이 그렇소?
옛날 평양성 안에 큰 부자가 한 집 있었는데, 영감 마누라 해로해 살건만 소생이라곤 무남독녀로 딸 하나라. 그 아이가 차차로 커가니까 성중 총각들 사이에서 자주 화제에 올랐다.
"어떤 놈이 재수가 좋아서 그 집에 사위로 들어가 그 많은 재산을 차지하게 되려누?"
물론 어른들 사이에서도 얘깃거리가 되고, 입심 좋은 부인네들은 부지런히 중매를 들려고 그집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런데 하루는 영감이 출입했다 들어오더니 엉뚱한 소리를 한다.
"나, 우리 아기딸년 신랑감 하나 골랐지." 할머니가 솔깃하여 묻는다. "어디 사는 누구의 몇째 아들이야요?" "그게 아니고... 저 대동문 안에서 포목전 하는 이주부 있잖소? 그 집에서 심부름하는 총각놈 있지? 갸 괜찮아 보이데." "뭐야요? 그놈은 작년까지 쪽박들고 남의 집 문전으로 다니며 비럭질 하던 거렁뱅이 아니요? 아니 우리 아기딸년이 어떤 아인데... 금지옥엽 같이 키워가지고 그래, 우리 집에 밥이 없소? 돈이 없소? 뭐가 부족해서 그따위 거러지한테다..." "쉬이 떠들지 말고... 그러기에 여자는 속이 좁다는 거야. 내 얘기 좀 찬찬히 들어보오. 제 집, 제 부모, 동기 의젓하게 갖춘 놈이 내 집에 데릴사위라고 들어왔다가 저희들끼리는 정이 들어 씨공달공 하다가도 늙은이들 귀찮다고 훌쩍 나가는 날이면, 우리 두 영감할멈은 끈 떨어진 됫박이야. 그랬다고 무를 수가 있소? 죽고 나면 재산은 다 저희들 거 되는 거고... 차라리 돌아갈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놈을 데려와야, 사위겸 내 자손 되는 거지. 안그렇소?" "!" "그러지 말고 그 전방엘 한번 가보오. 내가 보기엔 그늘에서 자란 아이답지 않게 애가 붙임성이 있고 괜찮아."
할머니가 다녀오고는 포목전 주인 이주부를 수양아버지로 삼아 혼인절차를 밟게 되니 평양 성중은 또 한번 그 얘기로 들 끓었다. 이제 혼인날이다. 부자의 단 하나밖에 없는 외딸이라, 돈을 아끼지 않고 풍성하게 차려서 온 성안 사람들이 잔치를 한 번 푸짐하게 얻어먹고 비틀거리며 돌아갔다.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던데... 이 내 팔자 기박하여... 어 취한다."
손님도 다 헤어지고 이제 가족끼리만 남아 신방을 꾸몄는데 불끈 방에서 신부가 소릴치며 뛰어나온다.
"어마나! 이걸 어째요? 신랑이 죽어서 뻣뻣해요."
모두들 놀라서 달려가 불을 켜고 보니 진짜 뻗어 있다. 용하다는 의원집엘 달려가고 무당집, 판수집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그런데 길 건넛집 할멈이 와서 그러는 것이다.
"우리집에 손님 한 분이 와 계신데 자신이 보면 무슨 수가 있을 거라고 그러셔요. 용한 의원이라대요." 어서 오시라고 해서 보였더니. "이거 일이 급하군, 과부 한 50명 구할 수 없겠소? " “과부라니, 늙은이요? 젊은이요?" "상관없으니, 빨리들 오래서 마당에 늘어앉아 큰 소리로 울라고들 일러요. 돈 뒀다 뭣에 쓰오? 행하를 미리 후하게들 주고..."
이리하여 잔칫집은 삽시간에 초상집이 되어 애고 대고, 처음엔 돈에 팔려 형식으로 우는 척 하다가 정작 제 설움에 복받쳐 목을 놓고 울어댔다. 신랑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고 앉았던 이 의원은 이제 그만들 울라고 손을 저었다. 신랑 얼굴에 핏기가 돌고 이내 눈을 떠서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약낭에서 소합원 한 알을 꺼내 더운 물에 개어서 흘려넣어 주니까, 그것을 삼키더니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는다.
"자 그럼, 사랑으로..."
안내를 받아 큰 사랑에 들어서니 평양 성중의 내노라는 명의들이 다 모여있다.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거 무슨 치료법이 그렇소?" "예, 원리는 다 같은 거죠. 이열치열이요 이냉치냉이라. 열은 열로 다스리는 거 아닙니까? 앞집에 와 묵으면서 듣자니 신랑의 자란 환경이 순조롭지 않답디다그려. '그래, 이거 병 나지' 하고 떠나는 걸 하루 물리고 대기했는데, 것 보셔요. 큰일날 뻔했지.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 병이 난다고 해요. 평소에 수양을 쌓은 사람이라면 웬만한 격변에 견디지만, 그렇질 못하면 으레 병이 나죠. 사업에 실패하고 피를 토한다든지... 그런데 이번 환자는 너무나 행복해진 환경에 그만 황홀해서, 여직 고생하던 생각을 하면 울음을 터뜨려야겠는데, 경사스런 자리에 그럴 수도 없고, 겹치고 겹친 설움을 꿀꺽 삼켰다가 변을 당한 거예요. 하니 설움 중에서 과부 설움보다 더한 게 어디 있겠소? 이것을 풀어서 뭉쳤던 슬픔을 끌어낸 거지요." "아 참, 성함과 거처가 어떻게 되시더라?" "나 성천 사는 이경화라오." "온 저런!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만은 이렇게 뵐 불이야..."
그는 인조 7년에 나 숙종 32년까지 산 인물로, 침구에 뛰어났고, 저술까지 있어 의학사상에 발자취가 뚜렷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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