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하) - 편저자 : 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4. 변란과 풍운의 국운
임금이 내려준 집을 거절한 윤득부
윤득부(1723~1799)의 본관은 해평이고 자는 사휴, 호는 신암이다. 평생동안 구차한 일은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의롭지 않은 방향으로는 한 발자국도 떼어놓지 않아 명성과 의리 그리고 풍채와 절조는 당대 제일의 풍류였다. 이 때문에 전조로부터 인정을 받아 성균관에서 유생을 지도하는 책임을 맡는 등 은혜와 예우가 융숭하고 극진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줄어듦이 없었다. 그래서 만약 당시 조정에서 아무런 결점이 없는 완벽한 인물을 꼽는다면 그보다 앞설 이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그가 처음에 세자 시강원의 유성으로 임명되어 임금이 반현에 집을 마련하도록 명령하고 집을 마련할 돈을 내려 주었더니, 윤득부가 사양하며 이렇게 아뢰었다.
"강가에 오두막집이 있는데 그 값도 상당하여 그 집을 팔아 적당한 새집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감히 돈을 내려 주시는 명령은 받들 수 없습니다."
임금이 여러 번 유시하였지만 끝내 명령을 따르지 않으므로 대궐 안의 일을 맡은 관원에게 엄밀히 영을 내려 강가에 있는 윤득부의 집을 후한 값으로 사들이게 하여 그 돈으로 집을 사서 살도록 하였는데, 반현의 초라한 집이 바로 그 집이었다.
스승의 꿈대로 우부빈객이 된 이의철
이의철(1703~1778)의 본관은 용인이고 자는 원명, 호는 문암이다. 도암 이재 문하의 선각자로 그와 비교될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도암이 언제나 글을 지을 적이면 번번이 그와 상의하곤 하였다. 어느 날 도암이 문암에게 말하였다. "지난밤 꿈에, 자네 등 뒤에 '우부빈객 이의철'이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보았네. 나는 헛된 꿈을 꾼 적이 없었는데 혹시라도 그 전처럼 맞히려는지?" 그러던 차에 정말로 문암에게 경전의 학문이 뛰어나다고 하여 우부빈객 홍문관 제학을 제수한다는 어명이 떨어졌다. 과연 스승의 꿈대로였다.
성실과 솔직함으로 끝내 아내를 효부로 만든 이규복
이규복(?~?)의 호는 송석이다. 처음 도암 이재를 찾아갔을 때 도암이 그의 집안 내력을 묻자, 이규복이 시를 지어 이렇게 대답하였다.
삼대에 걸쳐 기마병의 신역 대신 포목을 바치는 자이고 일생동안 산골 향교의 심부름하는 신세입니다
자신의 미천한 처지와 신분을 숨기지 않는 솔직한 사람으로 이미 분수를 알고 있었기에 그로 인하여 그의 성실한 마음도 알게 되었으며, 학문의 조예 역시 매우 뛰어난 선비였다. 그의 아내가 처음에는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았는데 이규복의 훌륭한 행실을 보고, 항상 다투며 갈등을 빚던 마음이 감화되어 마침내 효부가 되었다. 이규복이 강원도 정성의 송석에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 호를 송석으로 지었다고 한다.
귀신도 꺼려하는 억센 기상의 김정묵
김정묵(?~?)의 본관은 광주이고 호는 과재이다.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종가의 부인이 무당에게 미혹되어 대대로 전해오던 많은 재물을 모두 없앴다는 소문을 듣고, 김정묵이 몸소 그 무당의 집으로 찾아가 그의 늠름한 기품으로 자초지종을 물으려 하는데 무당이 파초를 쥐고 방울을 아무리 흔들어 대도 신이 내리지 않아 그의 술수를 행할 수가 없었다. 대체로 억센 남자의 기상은 귀신도 꺼려하는 것이었으므로, 과재의 행적이 우암 송시열의 어렸을 적 일과 비슷하였다.
과장의 문란함을 보고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 이직보
이직보(1738~1811)의 본관은 연안이고 자는 유종, 호는 중주이다. 젊어서는 과거 공부에 힘쓰기도 하였다. 그런데 매번 과거 시험장에 가보면 요로의 인사에게 청탁하는 규격화된 서신, 즉 관절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직보는 번번이 그 관절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종형인 판서 이익보가 그에게 관절을 받아 오도록 권하였으나, 이직보는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지암 김양행을 따라 여주에다 살 곳을 정한 뒤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이익보가 이렇게 책망하였다.
"선비가 과거 공부를 하여 벼슬하기를 일삼지 않으면 자신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는 관절을 하면서까지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겠다는 소신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으니 그의 조용하고 욕심이 적었던 것은 타고난 성격 때문이었다. 그의 종질 이술원은 늘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종숙은 바로 옛날에 이른바 속세를 떠나 은둔 생활하던 신선 같은 선비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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