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유(1633~1704)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퇴보, 호는 하계다. 현종 6년(166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대제학 추천이 있을 때 민점(1614~1680)이 권유를 추천하려고 하였는데 당시의 여론에 이서우(1633~?)도 만만치 않았으므로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민점은 어느 날 여러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제비를 시제로 하여 운을 내고 말했다.
"오늘 제비에 대한 시로써 여러분들의 시재를 시험하겠으니 속히 짓도록 하시오."
다른 선비들이 막 시상에 잠기는데 권유는 벌써 시를 완성하여 좌중을 압도하였다.
부리에 진흙을 물고 두보의 뱃전을 몇 번이나 스친 뒤에 한나라 궁궐에 들어가 우물(뛰어난 미인)이 되었느냐
나도 만약 너처럼 제비나 되었던들 모름지기 이 붓을 던지고 봉후나 찾을텐데
이 시가 나오자 모두 붓을 놓고 일어섰고 민점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권유를 일차로 추천하였다. 남인들은 명기(벼슬자리)를 아끼기 때문에 을사년 이후로 대제학은 오직 권유 한 사람뿐이었는데 서인은 대제학이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바로 이 점이 서인이 남인을 못 따르는 일단이라 할 수 있다.
숨차 헐떡이는 소를 보고 일평생 소고기를 먹지 않은 김주신
김주신(1661~1721)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하경, 호는 수곡이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김주신은 아버지가 없는 것을 항상 한으로 여겨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남달리 부지런하였다. 밤이 늦도록 글을 읽는 것을 안쓰럽게 여긴 어머니가 밤늦도록 글 읽는 것을 금하자 김주신은 밤이 늦은 시간엔 목소리를 낮추어 읽어서 어머니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하였다. 언젠가 김주신은 아버지의 비석을 소등에 싣고 재를 넘은 일이 있었는데, 소가 숨이 차서 혀를 빼물고 헐떡이는 것을 보고 너무도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이 때 그는 다음과 같이 한탄하면서 결심하였다.
'사람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소의 힘을 다 빼앗고 또 그것도 부족해서 그 고기마저 먹어 치우다니 말이 되는가!'
김주신은 그 뒤로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
숙종 22년(1969)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자원서별검이 되었는데 딸이 숙종의 계비(인원왕후)가 되자 돈령부도정을 거쳐 영돈령부사에 이르고 경은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장악원 제조와 호위대장을 겸임했다. 시호는 효간이다.
착한 끝은 있는가? 늦팔자가 활짝 핀 김우항과 권 참봉
김우항(1649~1723)의 본관은 김해이고 자는 제중, 호는 갑봉이다. 현종 10년(1669)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숙종 7년(1681) 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휘릉별검이 되었다. 이 때 함께 봉직한 참봉은 안동 권씨였다. 권참봉은 나이 50에 살림은 넉넉했으나 홀아비였다. 김 별검과 권 참봉이 함께 번을 들었는데 마침 능침의 나무를 도벌하다가 잡혀 온 청년을 심문하였다. 잡혀 온 사람은 남루한 복장에 20여 세쯤 되는 청년이었다. 먼저 도끼와 낫, 지게부터 빼앗은 뒤에 매를 치려고 하니 그 청년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저에겐 70세의 노모와 과년한 누이동생이 있습니다. 날씨는 추운데 식량은 없고 눈은 쌓여 나무를 팔아 양식을 사려는 욕심으로 잘못하여 능침을 범했습니다."
권 참봉은 본시 후덕한 사람이어서 청년의 말을 듣고 나니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어 김우항을 돌아보고 말했다.
"사정이 딱하니 용서해 주는 것이 어떻겠소?"
권 참봉의 제의에 김우항도 별로 반대하지 않았다. 권 참봉은 청년에게 오히려 엽전 10꿰미를 내어 주고 압수한 연장과 지게를 돌려주면서 단단히 타일렀다.
"이 돈으로 양식을 사서 노모와 누이동생을 잘 봉양하고 다음부터는 능침을 침범하여서는 안 되네."
그 청년은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런데 보름이 채 안 되어서 그 청년은 다시 붙들려 왔다. 권 참봉은 화가 많이 났지만 무슨 벌을 줄지는 내일 결정하리라 생각하고 그날 밤에 김별검과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데 김별검이 엉뚱한 의견을 제시하고 권참봉에게 강요하였다.
"동관(동료)께서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연세에 벌써 상처를 하셨습니다. 옛말에 사람이 아내가 없는 것은 대들보 없는 집과 같다고 했습니다. 조금 전에 그 나무 도둑을 유심히 보았는데 결코 상놈이 아닌 것 같고, 또 그에게 과년한 누이동생이 있다고 했으니 참봉께서 만약 속현(아내가 죽은 사람이 다시 장가 드는 것)할 생각이 아주 없지만 않다면 내가 중매를 서리다. 동관의 의향이 어떻습니까?"
이 말에 권 참봉은 한참 동안 말이 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맘에 없는 것은 아니나 내 나이 많다고 거절한다면 봉변만 당하는 것 아니오?" "그 문제는 내게 맡겨 두시고 잠이나 자고 내일 아침에 봅시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김 별검은 하인을 보내어 그 청년을 데려와서 마루 위로 올라오게 한 뒤에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재범에겐 용서하는 법이 없다. 그러나 어제 밤이 늦도록 권 참봉과 상의한 결과 너를 용서하기로 했으니 특별히 놓아준다. 그건 그렇고 듣자 하니 너에겐 시집 보낼 누이동생이 있다고 했는데 마침 권 참봉께서 상처하여 홀로 지내고 있으며, 살림 형편도 넉넉하여 두 집이 먹고 살 만할 뿐더러 근력이 아직은 건강하니 너의 의향이 어떠하냐?"
청년은 귀가 번쩍 뜨였지만 침착성을 잃지 않고 차분히 대답했다.
"집에 노모가 계시니 가서 여쭈어 보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의를 달 수 없는 대답이니 도리 없지 않은가? 김 별검은 맞장구를 쳤다.
"암! 그래야지. 속히 가서 노모의 허락을 얻어 오게나."
김 별검은 청년에게 엽전 5꿰미를 주어서 보냈다. 청년은 가면서 생각하였다. '우리 같은 알거지가 살판나게 생겼는데 들어온 복을 찰 수야 없지. 또 권참봉이란 분이 후덕한 군자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
청년은 생각만 해도 신바람이 났다. 집에 닿기가 무섭게 노모에게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노모 역시 좋아하기는 아들과 마찬가지였다. 죽기보다 더 싫은 배고픔을 면하게 되었으니 망설일 리가 없다. 청년은 즉시 재실로 돌아가 김 별검에게 노모의 승낙을 전달했다 혼인은 재빨리 이루어졌다. 혼인에 따르는 일체의 비용을 권 참봉이 도맡은 것은 물론이다. 권 참봉은 재임기간이 만료되자 벼슬에 더 이상 생각이 없었다. 그는 새색시를 데리고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가서 살았다. 아들 형제를 낳았는데 형제가 다 글재주가 있어 나이 겨우 17,8세에 향시에 나란히 합격하고 서울의 회시에 응시하여 형제 모두 합격했다.
한편 별검 김우항은 그 동안 삼사와 이조참판을 거쳐 경상감사로 부임했다. 김 감사가 안동지방을 순시하는 길인데 어떤 사람이 쪽지를 넣고 면회를 요청해서 만나 보니 옛 동관 권참봉이었다. 김 감사는 옛날 휘릉에 있을 때를 생각하고 급히 만나 주었다. 두 사람은 반갑게 손을 마주잡고 해묵은 우정을 나누었다. 권 참봉은 김 감사의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그 때 공이 아니었던들 이 늙은이는 오늘날까지 홀아비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 후에 난 아들 형제가 진사시에 합격하고 내일이면 금의 환향하는 날입니다. 감사께서는 옛정을 생각하여 내일 그 자리에 왕림해 주신다면 우리 집으로서는 더없는 영광이요 세상에서 기이한 인연이 될 것입니다."
김감사는 축하한다는 말을 계속하면서 흔쾌히 허락하였다. 이튿날 김감사는 약속을 지켜 많은 관료들을 대동하고 권 참봉의 집으로 가서 두 사람의 신은(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선배관료에게 하는 신고)을 청해 받고 운집한 손님들과 어울려 온종일 잔치를 즐겼다. 희색이 만면하여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주인 권참봉은 김 감사에게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공은 이 사람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옛날 우리가 죄를 다스리던 바로 그 나무 도둑이오. 지금은 장가도 들고 아들도 있고 살림도 먹고 살만은 하답니다."
김 감사가 감영으로 돌아갈 뜻을 비추자 주인은 극력 만류하면서 간청했다.
"오늘의 이 잔치는 다 공으로 인해서 차려진 잔치이니 제발 하룻밤만 유숙하면서 옛 우정을 나누어 봅시다."
주인의 청이 너무도 간곡하였으므로 김감사는 그 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주안상이 들어와서 술이 한 순배 돌았을 때 권참봉은 무슨 말인지 할 듯하다가 말고 할 듯하다가 말고 하므로 궁금한 생각이 든 김 감사가 물었다.
"주인장은 분명 내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지요? 서슴지 말고 어지 한 번 해보시지요." "예, 그러면 제가 이야기를 하지요. 저의 아내는 사실 오래 전부터 김공에게 결초보은할 은인이라고 늘 말해 왔지요. 뜻밖에도 김공께서 감사가 되어 이런 누추한 집에 오시게 되었으니 저의 아내로 하여금 직접 존안을 뵐 수 있도록 잠시 내당(안방)에 들러 주시면 어떻겠소?"
부득이 그 청을 받아들인 김 감사는 주인의 뒤를 따라 내당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 벌써 주안상이 차려져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 권 참봉의 부인이 나와서 공손히 절을 하였다. 김감사도 정중히 맞절을 하였다. 뒤이어 곱게 차려 입은 두 젊은 색시가 나와서 인사를 하였다. 이 집의 며느리들이었다. 김 감사는 다시 주인에게 인도되어 후원으로 돌아갔다. 후원엔 매우 조용하고 깨끗한 방이 있는데 머리가 백발인 노파가 손으로 문지방을 잡고 앉아서 무슨 말인지 같은 말을 자꾸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어보니 무슨 축원을 드리고 있는데 그 축원은 바로 김감사가 정승이 되도록 해 달라는 축원이었다.
김감사는 놀랍고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 사연을 주인 권참봉이 설명하였다. 바로 내 장모요. 이 집에 이사온 뒤로 이곳에 제단을 차려 놓고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축원을 하였는데, 이제는 너무 늙어 제단까지 갈 기력이 없어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방안에서 저렇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