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하) - 편저자 : 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기생들로 하여금 누추한 이름을 남기게 한 한지
한지(1675~?)의 본관은 청주이고 자는 석보, 호는 월악이다. 집의 한태동의 아들이다. 숙종 25년(1699)에 생원이 되고, 1705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한지가 충청도 감사로 있을 때 공무로 청주에 간 적이 있는데 천주에서 묵은 지 3일째 되는 날 밤이었다. 자다가 손끝에 뭉클하고 부드러운 물체가 와 닿는 감촉을 느꼈다. 표동표동한 여인의 살결이었다. 재색을 두루 갖춘 천주 관기 강도가 감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더니 그날 밤에 몰래 이불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강도는 모기 소리 만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저는 사또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만약 감사 나으리의 사랑을 입지 못하면 벌을 면치 못한다고 하시기에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이렇게 들어온 것이어요." "아, 그러냐? 그것 어려울 것 없다.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오면 될 것 아니냐."
그 날부터 13일 동안 한 이불 속에서 잤지만 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일이 없었다. 한지가 일을 마치고 청주를 떠나던 날, 기생 강도는 눈물을 흘렸다.
"왜 우느냐? 아직도 나에게 정이 남았느냐?' 강도는 눈물을 훔치면서 대답했다. "감사 나으리와 무슨 정이 있겠습니까? 명색이 기생으로 끝내 깊은 인연 한 번 맺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 속이 상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니까 울지요."
곁에 있던 천주 목사가 한 마디 거들었다.
"강도는 누추한 이름을 남기었고 감사는 꼿꼿한 이름을 남겼도다."
한지는 수많은 기생들의 시중을 받았지만 한 사람의 기생도 범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 한가한 날 막장을 불러 조용히 물어 보았다.
"사실대로 말해 보아라. 자네는 객고를 풀기 위해 다른 여자를 건드린 적이 있느냐?" 그 막장이 이실직고하자 한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 몸이나 단속해야지, 내가 무슨 수로 다른 사람까지 막겠느냐. 다만 지나친 것만 삼가라!"
남을 돕는 일로 즐거움을 삼은 임준원
임준원(?~?)의 자는 자소다. 인품이 잘나고 기상이 늠름하며 말솜씨가 있었으나 살림은 가난하고 부모는 연로하여, 오랜 생각 끝에 뜻을 꺾고 내수사(궁중에서 쓰는 물자와 노비에 관한 사무를 말아보던 관아)의 벼슬아치가 되어 많은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되었다. 수천 냥 부자가 되자 임준원은 새로운 결심을 하였다.
"내 재산도 이만하면 부모를 봉양하고 조상 제사를 모시는 데 충분하니 이제 이 자리를 떠나자!"
임준원은 그날로 그 벼슬을 그만두고 들어앉아 읽고 싶었던 글도 읽고 친구들과 사귀면서 자신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의 친구들을 보면 유찬홍, 홍세태, 최대립, 최승태, 김충렬, 김부현 등이었는데 유찬홍은 바둑과 시로 유명했고 호는 춘곡이며, 홍세태는 시로 이름이 나 있었고 호는 창랑이다. 나머지 다른 친구들도 모두 당대의 명사들이었다.
유찬홍은 술을 즐겨 마셨고 주량이 두어 말은 되는 대주객이었고, 홍세태는 양식이 자주 떨어지는 가난한 살림을 하였다. 임준원은 유찬홍을 자주 불러 술을 양껏 대접하였고, 홍세태에게는 굶지 않도록 양식을 대주었다. 또 좋은 날 좋은 경치는 빼놓지 않고 친구들을 초청하여 시를 짖고 읊조리며 풍류를 즐겼다. 임준원의 생활은 남을 위해 베푸는 일에 즐거움을 찾으면서도 본인은 항상 모자람을 느꼈다. 가난한 친척이나 친구들은 혼사나 장례를 치를 때는 으레 임준원의 도움을 믿게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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