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성(1596~1664)의 본관은 연일이고 자는 덕기, 호는 도촌이다 포은 정몽주의 9세손이다. 그는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고 손자 정제현이 숙휘공주에게 장가 들어 인평위에 봉해졌지만, 정유성은 몸가짐을 더욱 조심하고 생활을 더욱 검소하게 하였다. 하루는 손자며느리인 공주를 보고 말하였다.
"공주는 이 시할아버지로 하여금 손자와 함께 오래 같이 살게 해줄 수 없소?"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공주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복이 과하면 반드시 재앙이 뒤따르는 법이오. 우리 집은 대대로 청빈한 집안인데 공주의 씀씀이를 보니 과한 듯하오. 부디 절약하도록 하시오."
얼마 후에 손자 인평위가 죽자 방안에 들어가 궁중에서 내사한 의복 둥을 보고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저렇게 사치하고서야 내 손자가 어찌 죽음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