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경(1597~1673)의 본관은 온양이고 자는 군평, 호는 동명이다. 인조 7년 별시문과에 장원하고 홍문관 등 여러 청환직을 지내는 동안 훌륭한 글솜씨로 이름을 날렸다. 명나라 문장 강일광이 왔을 때 김유가 접반사였는데 이 때 강일광을 대접하기 위해 시문의 대가를 전국으로 널리 구하였다. 당시 정두경은 아무 벼슬도 없는 백도로 응하였는데 당당하게 선발되어 유례가 드문 일로서 당시에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계곡 장유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정두경의 솜씨를 찬양하였다.
백두의 신분으로 나라를 빛낸 것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일 그 사람의 시문을 보면 온통 심장 전체가 비단인가 봐
또 현종은 그의 시를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나라 안에서는 왕이 으뜸이요 하늘 밑에선 부처님이 높다네
그의 시를 읊고 난 왕은 다음과 같이 전교하였다. "김종직 같은 사람이 문형(대제학)을 잡지 못한 일이 국조의 잘못된 사례로 남았는데, 오늘날 정두경 역시 끝내 대제학이 되지 못하였으니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니냐? 그는 생시에 예조 참판을 지냈으니 대제학에 증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