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의 본관은 밀양이고 자는 상지, 호는 현계다. 박서에게는 어릴 적에 이미 혼인을 언약한 처녀가 있었는데 열병을 앓고 난 뒤에 그만 실명하여 장님이 되었다는 소문이 났다. 끔찍한 소문에 놀란 박서의 부모는 혼약을 파기하고 다른 규수를 물색하기로 하자, 정작 박서는 부모를 설득하였다.
"병 때문에 실명한 것은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비록 장님이 되었지만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차라리 장님 아내와 함께 사는 것이 낫지 신의를 잃으면 세상에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 박서의 말을 기특하게 여긴 부모는 박서의 청을 받아들여 혼약을 파기하고 않고 혼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 어찌된 일인지 초례청에 들어 선 신부는 장님이 아니지 않은가! 두 집의 혼인을 막으려는 자가 퍼뜨린 헛소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