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1484-1545)의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관지, 호는 송암이다. 진사시에 합격한 뒤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명종 즉위년(1545)에 정승이 되어 좌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는 충숙이다.
을사사화 때에 억울하게 죄를 받았는데, 정순붕이 유관을 역적 모의를 하였다고 터무니없이 얽어서 위조된 공훈을 공신녹권에 기록하려고 도모하니, 유관의 가속 및 종들은 모두 몰수되어 정순붕 집안의 노비가 되었다. 그 가운데 갑이란 이름을 가진 여종이 있었는데 나이 겨우 14, 5세쯤 되었으며 총명과 지혜가 뛰어났다. 정순붕이 매우 아끼며 어여쁘게 여겨 의복과 음식을 마치 어미가 자식에게 하는 것처럼 주었다. 그러자 갑이 또한 정순붕이 생각하기도 전에 눈치 빠르게 비위를 맞추며 일마다 정성을 다하고 매번 옛날 주인에 대한 말이 나올 적마다 반드시 헐뜯으며욕하였다.
"저들이 항상 나를 구박하면서 인색하게 대했으므로 내가 그 때문에 설움을 갚는 것이다"
정순붕이 더욱 그를 신임하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이가 값진 그릇을 숨겼다가 들켰다. 정순붕이 갑이에게 힐문하자, 갑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제가 이곳에 와서 주인이 주는 옷을 입고 주인이 주는 밥을 먹으며 은혜와 대우가 견줄 데가 없는데 무엇이 괴로워서 물건을 훔치겠습니까?"
정순붕이 의심을 하면서도 그를 풀어 주었다. 이보다 앞서 갑이가 그 집의 젊은 종과 정을 통하고는 그 종에게 말했다.
"주인이 만약 나를 다그치면 회초리의 독을 견디지 못하여 장차 너를 끌어들여 증거로 삼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내가 액땜을 하려고 하니 반드시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팔이나 다리를 구해 가지고 오라"
종이 갑이의 말대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팔 한쪽을 잘라다 주었다. 그러자 갑이가 정순붕의 베개 속에다 몰래 잘라 온 팔을 넣어 두어 얼마 안 가서 정순붕이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 그 뒤에 정순붕의 집안에서 그 사실을 알고 조사를 하자 갑이는 태연하게 반문했다.
"너희들이 우리 상전을 죽였으니 바로 나의 원수이다. 내가 죽으려고 한 지가 오래였는데 이제 원수를 갚았으니 죽을 곳을 알았다. 그런데 무엇을 물으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