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1486-1557)의 본관은 풍천이고, 자는 사경, 호는 정용재이다. 중종 2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6년 뒤 문과에 급제하였다. 을사년(1545) 7월의 인종 상사에 조정 신하들 중 절반이 평상복 차림의 옥관자를 썼으나 유관과 임권만은 유독 소복을 입었었다. 그리고 인종의 위패를 별묘인 연은전에다 모시려고 할 때에, 임권이 인종은 위로 중종을 계승하고 아래로 명종에게 물려 주었으니 실제로 대통을 이은 군주인데, 별도로 연은전에서 모시게 하는 것은 남에게 붙여서 먹는 그런 임금과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혼자서 정론을 가지고 항거하며 사사로운 의논에 따르지 아니하였다. 임권이 언제인가 경연에 나아가 아뢰었다.
"김안로가 조정에 있게 되자 소인으로서 일정한 주관이 없는 자들이 붕당을 만들어서 못된 짓을 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겠지만 전하께서도 붕당을 만들게 하여 그들에게 못된 짓을 마음대로 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중종이 대답하였다. "내가 그 책임을 핑계댈 수는 없다" 임권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융성하도다 임금의 말씀이여! 참으로 만세 제왕의 본보기이다. 신하의 바른 말을 수용하고 과실을 자신에게 돌리니 한 가지를 거론하여 두 가지의 아름다움을 갖춘 격이다. 만일 임금이 자신이 옳다고 하면서 바른 논의를 듣기 싫어 한다면 누가 기꺼이 바른 말을 발설하여 화의 함정으로 빠져들려고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