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엽(1517-1580)의 본관은 양천이고, 자는 태휘, 호는 초당이다. 중종 35년(1540)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명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을 지냈다. 광해군 15년에 아들 허균이 반란을 계획하다가 잡혀 죽음을 당하자, 그 화가 죽은 허엽의 시체를 톱으로 자르는 데 이르렀다. 그 뒤에 사간 심대부가 그 산을 지나다가 울음소리를 듣고 이상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허엽의 무덤에서 시체가 톱으로 잘리는 화를 당한 뒤에 밤마다 울음 소리가 들립니다"
심대부가 그 이야기를 듣고 돌 위에다 시를 썼다.
못난 자식 두기보다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나으니 빈 산 속에 백골이 쓸쓸하구려 밝은 영혼이여 밤에 울지를 마소 순장 때 쓰는 기물 역시 인간이 만들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