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고(1508-1571)의 본관은 영양이며, 호는 격암이다. 그는 풍수, 천문, 복서, 상법에 있어서 유전되지 않은 비결까지 모두 터득하였다. 그가 젊었을 때에 울진에 있는 불영사로 가다가 길에서 전대를 짊어지고 서 있는 어떤 중을 만났다. 그 중이 지고 있는 짐을 남사고가 타고 있는 말에다 얹어 달라고 애원하므로 남사고가 허락하여 얹어 주었다. 함께 불영사에 이르러 부용봉에서 놀다가 소나무 아래에서 장기와 바둑을 두는데 중이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크게 지르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한참 지나자 그의 코 끝부분이 처음으로 드러나더니 점차로 온 몸이 드러나면서 말하였다.
"두렵지 않은가?" "무슨 두려움이 있겠소" "그대가 겁을 내지 않으니 가르칠 만하다" 중이 그에게 비결을 주며 말하였다. "그대는 비범한 골격을 지녔으니 힘쓸지어다" 중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어디론지 떠나 버렸다. 남사고가 이때부터 천지 조화의 심오한 비밀을 환히 보게 되었다. 만년에는 천문학 교수로 서울에 있었다. 그런데 마침 태사성 주위에 테를 두른 모양의 빛이 보여 불길한 징조를 예고하였다. 관상감 정 이번신이 모든 일을 자신이 떠맡겠다고 하였다. 남사고가 웃으면서, "떠맡을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하고는,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도중에서 죽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손곡 이달이 통곡하며 시를 썼다.
난새와 봉새 같은 인물이 저승으로 훌쩍 떠났는데 그대가 다듬어 놓은 장막 아래 다시 누가 있는가 사위와 제자들 유고를 수습하니 옥골의 복숭아꽃은 만세토록 봄이구려
격암이 일찍이 새벽에 동쪽을 향하여 주문을 외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살기가 등등하다. 임진년에 왜적이 반드시 크게 이를 터인데 나는 미처 보지 못하겠지만 그대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서울의 지형을 이렇게 논하였다. "동쪽에는 낙봉이 있고 서쪽에는 안현이 있어 서로 다투는 형상이니 틀림없이 동쪽, 서쪽의 다툼이 있을 것이다. '낙'자를 풀어 보면 '각마'가 되니 반드시 분열되어 제각기 설 것이고, '안'자를 풀어 보면 '혁안'이 되어 위태로웠다가 편안해지니 서인은 처음에는 위태롭다가 나중에는 편안해질 것이다" 뒤에 그 말이 과연 들어맞았다. 격암이 또 예언했다. "사직동에 왕기가 있어 종묘사직을 중흥시킬 임금이 반드시 그 구역에서 나올 것이다" 그 말대로 선조가 그곳에서 살다가 명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임진왜란을 평정하여 종묘사직을 중흥시킨 임금이 되었다.
남사고가 자기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기 위하여 명당을 구해서 장사를 지낸 뒤에 그 묘터를 보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묘자리를 여러 번 옮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으로 한 묘터를 얻게 되었는데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는 용이 날아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비룡상천의 형국이었다. 남사고는 너무 좋아 그의 아버지 유해를 그곳으로 옮겨다 장사를 지내며 흙을 퍼다가 봉분을 쌓았다. 이때 일을 거들던 한 일꾼이 노래를 불렀다.
"아홉 번을 옮기고 열 번 장사지내는 남사고야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만 생각하지 마라. 말라 죽은 뱀이 나뭇가지에 걸린 형국이 여기가 아닌가"
남사고가 듣고서 놀랍고 이상하여 산 형세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과연 죽은 내룡이었다. 급히 그 일꾼을 따라나섰지만 갑자기 보이지 않고 어디로 떠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명당이란 제각기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어서 억지로 차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제야 남사고가 탄식하고, 겨우 피해가 없는 정도의 묘터를 가려 다시 옮겨 장사지냈다.
남사고가 젊었을 적에 여러 번 향시에는 합격하고서도 회시에는 낙방을 하므로 어떤 사람이 물었다.
"자네는 왜 남의 운명은 잘 맞히면서 자신의 운명을 잘 맞히지 못하여 부질없이 해마다 헛걸음을 하는가?" "개인적인 욕심이 발동하면 술수가 도리어 어두워지는 법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