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3. 왕도정치의 시작
잘린 여자 속옷을 항상 옆에 두고 후손을 경계한 박영
박영(1471-1540)의 본관은 밀양이고, 자는 자실, 호는 송당이다. 아버지는 수종인데, 벼슬은 이조 참판에 이르렀다. 양녕대군의 딸에게 장가들어 박영을 낳았다. 박영은 재주와 도량이 넓고 컸다. 성종 22년(1491)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어느 날 그가 궐내에 들어가 숙직을 하다가 탄식하였다.
"말을 달리고 칼을 시험하는 것은 한 용부의 일일 뿐이다. 사람으로서 학문을 하지 않으면 어찌 군자가 되겠는가"
그는 드디어 결단을 내려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낙동강 가에 집을 짓고 신당 정붕에게 수학하였는데,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생각하고 몸소 실천하며 두문불출한 지 수년이었다. 어느 날 신당이 손을 들어 냉산을 가리키며 박영에게 물었다.
"저 산 밖은 어떠할까?" "외면이 바로 전면이니 저것이나 이것이나 매한가지일 것입니다" 신당이 웃으며 말하였다. "오늘에야 그대가 책을 읽은 공효가 있음을 알겠도다"
그대로 수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부지런히 강구하였다. 한번은 김해부사로 있을 적에 이웃집 여자의 곡소리를 들었다. 급히 형리를 시켜 데려와 "어찌하여 우느냐?"고 물으니,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우리 남편이 아무 병도 없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박영이 사람을 시켜 그 남편의 시체를 메어 오게 하고 힘센 군교를 시켜 시체를 반듯하게 누인 다음, 손에 힘을 주어 시체를 가슴에서부터 아랫배까지 누르게 했더니, 드디어 배꼽 속으로부터 손가락 만한 대나무 가지가 뚫고 나왔다. 박영이 그 여자를 결박해 놓고 심문하자 그 여자가 다 실토하였다.
"마을의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같이 살기로 약속하고, 제 남편이 술에 취해 자는 틈을 이용하여 그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박영이 곧 군사를 풀어 그 사나이를 급히 잡아다 물으니 그 말이 모두 부합되므로 법에 따라 처벌하였다.
하루는 들새가 관아 후원에 날아와서 놀란 소리로 세 번 울고 서남쪽으로 가 버렸다. 박영이 가족들을 불러 급히 행장을 꾸리도록 했는데, 행장을 미처 꾸리기도 전에 금부도사가 와서, 반역을 도모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심문을 받을 적에 뼈마디가모두 부서질 정도였다. 박영이 큰 소리로 추관에게 물었다.
"누구의 고발이오?" "아무의 고발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과 원한을 맺은 사람으로는 경주부윤 유인숙이 나보다 심하였다. 유인숙도 잡혀 왔다면 무고임이 분명하니 나는 살아날 수 있겠다"
중종이 바야흐로 국정을 베풀고 친히 국문하다가 이 말을 듣고 그 까닭을 물었다.
"그 사람이 문서를 위조하여 남의 전지를 빼앗으려고 김해부에 소송을 했다가 사리가 틀려서 배척을 당했으며, 또 경주부에 소송했더니, 경주부에서는 그 간사한 짓에 분노하여 감사에게 보고해서 형벌을 받았으므로 원한이 나보다 심할 것입니다. 저놈이 내가 반역을 도모한다고 먼저 고발하였으니 경주부윤 유인숙도 그 다음에 고발할 것입니다"
임금이 드디어 유인숙에게 물으니, 유인숙의 진술이 박영의 진술과 같으므로, 고변한 자를 반좌율(무고한 사람에게 무고 입은 사람에게 부과한 죄와 동일하게 부과함)에 적용하여 처단하였다.
박영이 선전관에 임명되었을 적의 일이다. 어느 날 준마를 타고 화려한 옷을 입고 저녁 무렵에 수문동을 지나는데, 동네 어귀에서 꽤 아름다운 여인이 손짓하며 불렀다. 박영이 말에서 내려 종에게 "내일 아침 일찍 오라"고 이르고는 그 여인을 따라가니 사람이 없는 깊숙하고 외진 곳에 집이 있었다. 박영이 그 집에 이르자, 날은 이미 저물어 캄캄하여졌다. 그 여인이 박영을 대하고는, 갑자기 눈물을 주르르 흘리므로 그 까닭을 물었다. 여인은 곧 손을 들어 말소리가 나지 않도록 중지시키고, 낮은 목소리로 귀에 대고 말하였다. "공의 풍채를 보니 필시 보통 사람이 아닌데, 나로 말미암아 비명에 죽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슬퍼합니다" 박영이 괴이하게 여겨 다시 묻자 여인이 말하였다. "도적들이 나를 미끼로 삼아 사람을 유인하여 죽이고 그 의복과 타고온 말, 말안장 등을 나누어 가진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내가 날마다 탈출할 것을 생각해 왔으나 그들이 죽일까 두려워 감히 탈출할 계책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은 나를 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박영은 칼을 빼앗아 들고 앉아서 기다렸다. 밤중에 방 위의 다락에서 도적들이 여인에게 큰 밧줄을 내려보내 "그자를 묶어 올려 보내라"고 하였다. 박영은 몸을 솟구쳐 벽을 차 무너뜨리고 급히 여인을 업고 탈출하여 담을 뛰어넘었다. 여인이 가지 말라며 붙잡자 그는 속옷 자락을 잘라 버리고 떠나왔다. 그 이튿날 벼슬을 사직하고 선산으로 돌아와서, 무인 노릇을 버리고 글을 읽어 생각을 바꾸고 세상의 순수한 유학자가 되었다. 평소에 앉은 자리 옆에 항상 잘린 여자 속옷을 두고서 자제들에게 보이면서 경계하였다.
중종 16년 신사옥사에 무고를 당하여 혹독한 형을 받고 얼마 뒤에 방면되었다. 70세에 별세하였다. 이조 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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