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국(1485-1514)의 자는 국필, 호는 사재이며, 김안국의 아우이다. 중종 2년(1507)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중종 4년에는 문과에 장원하였다.
황해감사로 있을 적에 남곤, 심정이 간사하게 사람을 모함한 정상과 정암 조광조 등 여러 현인이 자기 일신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한 사실을 극진히 진술한 수천 자에 달하는 소를 작성하였다. 마침 막료인 도사 남씨가 남곤의 일족으로서 사간원 헌납에 발탁되어 상경하게 되었다. 김정국이 그 소를 남씨에게 주면서 말했다.
"그대가 서울에 당도하거든, 이 소를 올리게"
남씨 또한 거절하지 않고 소를 가지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김정국의 꿈에 신인이 나타나 말했다.
"공이 만일 이 소를 올리면 사림이 어육이 될 것이니, 지금 사람을 급히 뒤쫓아 보내면 도로 찾아올 수 있을 것이오"
김정국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곧바로 역졸을 보내어 도로 찾아오게 하였더니, 역졸이 벽제관에 이르러 남씨를 만나 도로 찾아 왔다. 남씨가 서울에 왔을 적에 어떤 사람이 그 소의 내용에 대하여 묻자, 남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대답하고,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를 뜻이 높은 이로 여겼다. 남씨는 뒤에 벼슬이 판서에까지 이르렀다. 모재 김안국은 매양 일렀다.
"이 소가 만일 올라갔으면 사람들이 어찌 내가 몰랐다고 말하겠는가. 우리 형제는 마땅히 죽었을 것이요, 이밖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를 일이다"
그때 모재는 파직만 되었을 뿐이고, 사재는 벼슬이 삭탈되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사재가 모재보다 중한 죄를 받은 것은, 그 소가 궁내에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이 그가 소를 올리려 한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말했다. "남지정(남곤의 호)이 주청사로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올 적에 김정국이 황해감사로 있으면서 황주 초지정에 나가 만나 보고는 '사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노여움을 건드려 죄가 가중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