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손(1431-1503)의 본관은 남원이고, 자는 유경이다. 그의 아버지 윤처관이 의정부 녹사가 되어 이른 새벽에 정승 박원형의 집 문 앞에 가서 명함을 드렸는데, 문지기가 정승이 주무신다는 핑계로 명함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 시장한데다 피곤하여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윤처관은 아들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주가 없는 탓으로 이와 같이 욕을 먹으니, 너는 모름지기 학업을 부지런히 하여 네 아비처럼 되지 말아라"
이야기를 들은 윤효손이 그 명함 끝에다 아버지 몰래 시를 적어 넣었다.
정승은 해가 높도록 단잠을 자는데 대문 앞 명함 꼭지에는 털이 났도다. 꿈속에서 주공을 만나 보거든 당시 어진 선비 환영하던 수고를 꼭 물어 보소서
이튿날 아침에 윤효손의 아버지가 아들이 시를 쓴 것도 모른 채 다시 찾아가서 명함을 드렸더니 박원형이 그 시를 보고는 즉시 불러들여 물었다.
"이 시는 네가 쓴 것이냐?"
윤처관이 놀랍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글자의 획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그의 아들 윤효손이 쓴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박원형이 윤효손을 불러다 보고는 극도로 감탄하며 칭찬하고 정승의 딸을 윤효손의 아내로 삼아 주었다.
세종 32년(1450)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단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세조 3년에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고 기로소(나이가 많은 임금이나 70세가 넘은 문관 정2품 이상 되는 노인이 들어가서 대우받던 기구)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