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1521-1565)의 본관은 광주이고, 자는 몽서이다. 중종 38년(154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명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홍문관 전한에 이르렀다. 성종이 친히 경회루의 못가에 나아가 비오기를 빌며 뜨거운 뙤약볕 아래 앉아 있는데 갑자기 풍악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고 좌우의 신하들에게 까닭을 물었다.
"방주감찰(수석 감찰)의 집이 이웃에 있는데 오늘이 연회 하는 날입니다"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아 백성들이 몹시 괴로워하므로 내가 지금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풍악도 걷어치우게 한 채 한데서 이렇게 빌고 있는데, 국록을 먹는 무리들이 어떻게 감히 풍악을 벌여 놓고 즐겁게 노느냐" 임금이 모두 잡아다 옥에 가두라고 명하니 그 자리에 있었던 13명이 한꺼번에 갇히게 되었다. 이에 그들의 집에서 자제들을 시켜 글을 올려 애걸하였다. "저들이 어처구니없는 죄를 짓고는 또 어린 자제를 시켜 소를 올리게 하여 모면하기를 애걸하니 더욱 밉살스럽다" 임금이 화를 내며 모두 잡아들이도록 명하자 소에 연명하였던 아이들이 모두 겁을 내어 달아나 흩어졌는데, 김규 혼자 도망하지 않고 잡혀 왔다. "너는 어린아이인데 어찌 혼자 도망하지 않았는가?" 임금이 묻자 김규가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이 아비를 구원하려고 소를 올렸는데 차라리 죄를 받을지언정 어찌 감히 도망을 하겠습니까?" "이 소는 누가 지었는가?" "신이 지은 것입니다" "누가 썼는가?" "신이 썼습니다" "네 나이 몇 살인가?" "열세 살입니다" "네가 소를 짓고 글씨를 쓸 수 있는가 시험해 보겠다. 만약 속이면 당장 목을 베일 것이다" "짓고 쓰기를 모두 신의 손으로 한 것이오니 한번 시험해 보소서" 임금이 '가뭄을 민망하게 여긴다'는 제목으로 글을 짓게 하였더니, 그 자리에서 다 짓고 그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옛날 동해에서는 원통하게 죽은 과부 때문에 3년 동안 가뭄을 불러 들였고, 은나라 임금 성탕은 천 리에 비를 내리게 하였으니, 성상께서 그런 일들을 생각해 주소서" 임금이 매우 기특히 여기며 김규에게 물었다. "네 아비가 누구인가?" "방주감찰 김세우입니다" "네 이름은 무엇인가?" "김규입니다" "네가 글도 잘 짓고 글씨도 잘 쓰니, 네 글을 보아 네 아비를 석방하고 네 글씨를 보아 네 아비의 친구들을 석방하니, 너는 아비에 대한 효도를 임금에게 옮겨 충성하여라" 임금이 어필로 써서 중관(내시)에게 명하여 의금부 감옥에 갇힌 13명을 모두 석방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