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1524-1557)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중원, 호는 남봉이다. 재주와 학식으로 일찍이 이름이 알려졌고 명종 원년(1546)에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이어 생원시에 5등으로합격하였는데 당시에 23세였다. 그 뒤 명종 3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직제학 김노가 주역 점을 잘 쳤는데 김홍도가 처음 태어났을 적에 점을 쳐보았더니 이름을 귀갑이라고 하라는 점괘가 나왔으므로 어릴 적의 이름을 귀갑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김홍도가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자, 사람들은 그가 장원할 암시였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김노는 한창 병이 들어 앓고 있다가 그 소식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았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뒤 얼마 안 되어 정말 죽고 말았다. 그 뒤에 김홍도가 윤원형과 사이가 좋지 않아 홍문관 전한으로 갑산에 귀양가서 죽었는데 갑산으로 귀양간다는 점괘가정말 들어맞은 것이었다. 뒤에 벼슬이 회복되었으며 아들 기수가 존귀하게 되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김홍도는 기상이 호방하고 사물을 얕잡아 보아 늘 입버릇처럼 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