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운(1416-1478)의 본관은 무송이고, 자는 망지, 호는 낙한헌이다. 세종 20년(1438)에 진사시, 26년에 문과에 각각 합격했다. 단종 원년 계유정난 때 수상을 지내고, 성종조에 좌리공신에 녹훈되었다. 그의 문명은 신숙주와 함께 명망이 높았다. 동년(과거에 함께 합격한 사이)모임에서 신숙주와 겨루어 대련을 짓기로 하였다. 신숙주가 먼저 "반가운 친구는 모두가 백발이요" 하니 윤자운이 "젊은 재상은 다만 일편단심뿐"이라고 화답했다. 신숙주는 그만 탄복하여 무릎을 꿇고 윤자운을 극구 찬양하였다. "나는 공의 정밀하고 민첩함을 따를 수 없구려!" '흑두'와 '청안', '백발'과 '단심'은 멋진 대구를 이루어서 훌륭한 대련을 이루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신숙주를 감탄시킨 것은 '단심'이란 쌍관어를 절묘하게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쌍관어'란 한 단어가 두 가지 이상의 뜻을 동시에 갖고 있는 말이며, 시작법에서 은유의 맛을 느끼게 하는 시의 기법이다. 그때 신숙주가 사랑하던 기생의 이름이 바로 '단심'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