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애(?-1467)의 본관은 길주이고, 벼슬은 회령부사에 이르렀다. 그는 동생 이시합과 함께 반역을 도모했다. 함길도 절도사 강효문이 길주에 도착하자 이시합은 길주의 관기로 있는자신의 첩 소생 딸을 절도사의 침실에 들여보내어 수청을 들도록 하고 잠긴 문을 안에서 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 문으로 들어온 반란군들에 의하여 절도사 강효문은 피살되었고, 이시애는 길주를 발판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세조는 귀성군 이준을 도총사로 삼고 조석문을 부총사로 삼았다. 귀성군 이준은 겨우 18세였지만 무술과 전략이 있다는 이유였다. 또 허종을 함길도 절도사로 삼고 강순과 어유소를 각각 대장으로 삼아 이시애 난의 토벌에 나섰다.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여러 고을에서 수령을 살해하고 반란군에게 호응하는 일이 일어났다. 함흥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관청을 포위하고 관찰사 신면을 공격하였는데, 신면은 누각에 올라가 방어하다가 힘이 달려 끝내 피살되고 말았다. 조정에서는 관서지방 출신으로 벼슬이 2품에 오른 단천 사람 최윤손을 불러 효유사로 임명하고 함길도로 내려보냈다. 효유사의 임무는 반란군을 회유하고 그곳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막중한 임무를 띠고 내려간 최윤손이 반란군의 편이 되어 조정의 비밀을 그들에게 넘겨주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다. 강순과 허종이 거느리는 관군은 홍원에서 그들과 격전을 벌이고 또 북청과 만령에서도 크게 싸웠다. 반란군은 높은 지역으로 달아나 진을 치고 화살을 비오듯 쏘아 대었으므로 관군이 접근할 수 없었다. 토벌 좌장군 어유소는 작전을 바꾸었다. 정예병을 뽑아 작은 배에 나눠 태우고 풀색, 나무색으로 물들인 옷을 입혀서 보냈다. 그들은 해안을 통해 상륙하여 나뭇가지를 잡고 그들이 있는 곳보다 훨씬 높은 곳을 택하여 그들의 등뒤에서 징을 치고 북을 두드려 소란을 피우도록 작전을 짰다. 등뒤 높은 곳에서 갑자기 북소리와 징소리가 요란하게 나자 적들은 깜짝 놀라 대오가 흐트러지고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뒤따라 도착한 관군의 대부대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머리에 방패를 이고 개미떼처럼 언덕을 기어오르니, 반란군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진용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시애는 급하게 길주로 도망하였다. 그는 가족과 살림을 꾸려 오랑캐 땅으로 도망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길주 사람 허유례가 적장의 부하 이주 등을 꾀어 이시애와 이시합을 생포하도록 하였다. 그들의 머리는 진중에서 끊어져 서울로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