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안신(1369-1447)의 본관은 상주이다. 태조 2년(1393)에 생원시에 장원하고, 정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 지평으로 있을 적에 대사헌 맹사성과 함께 평양군 조대림을 국문한 일이 있었는데, 왕에게 아뢰지 않고 국문하다가 태종에게 큰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그는 맹사성과 함께 수레에 실려서 끌려갔다. 거리에서 사형을 당할 참에 이르러 맹사성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고 어쩔 줄 몰라 하였는데, 박안신은 조금도 두려운 빛이 없었다. 그가 맹사성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나의 상관이고 나는 당신의 부하다. 그런데 이제 둘이 함께 죽게 되었으니 상관과 부하 사이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전에 나는 당신을 지조를 가진 사람으로 알았는데 어찌 이렇게도 겁이 많은가? 당신은 저 삐걱거리는 수레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또 그는 나졸에게 기와 조각을 가져오라고 하여 거기에 지남철 끝으로 긁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했으니 죽음이야 달게 받겠지만, 다만 간하는 신하를 임금이 죽였다는 이름을 남길까 두렵다. 안신은 눈을 부릅뜨고 옥리들에게 말했다.
"이것을 그대로 상께 보고해라. 만약에 보고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악귀가 되어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잡아먹겠다"
이 보고를 받은 태종은 더욱 진노하였다. 그러나 하륜, 성석린, 권근 등 대신들이 힘을 다하여 그를 구제하였다. 그는 간신히 사면되어 곤장을 맞고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 뒤에 안신은 사신이 되어 일본에 가게 되었는데, 뱃길에서 해적을 만났다. 그가 두려운 빛이 조금도 없이 태연하게 걸상에 걸터앉아 조용하게 상대하자, 해적들이 그의 위엄에 눌려 감히 접근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해적들에게 잡힌 일행이 모두 안전하게 풀려났다. 벼슬은 대제학에 이르렀고, 시호는 정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