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 - 역사 속으로 찾아가는 죽음 기행 : 맹란자
제8장 화려항 명성, 처참한 최후
권력자의 종말
통계에 의하면 장수를 누리는 직업으로는 정치가를 꼽는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고 하는 확고한 신념 때문일까? 아니면 권력에 대한 불사신과도 같은 끝없는 집념 때문일까? 그들은 비교적 오래 살았다. 나이 일흔 살 먹기가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고 말하며, 평균 수명이 고작 마흔 살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당시, 황희 정승은 90을 살았고, 윤선도는 85세, 송시열은 83세. 허목, 허적도 여든을 넘겼다. 독일의 아데나워는 91세, 이승만 대통령도 91세에 사망하였으며 이들은 재임시에 87세, 86세의 나이로 모두 권좌에서 쫓겨났다. 윈스턴 처칠도 91세로 죽었는데 그 역시도 권고사직으로 80세에 은퇴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스페인의 프랑코는 83세, 드골 80세, 아이젠하워 79세, 후르시쵸프 77세, 모택동 80세, 등소평 93세, 사라잘은 81세로 생을 마감했다. 장수자들 중에는 장기 집권자가 또 많았다. 이에 비하면 세습 왕들의 수명은 단명한 편이었다. 쟁취를 위한 신념을 가질 필요가 없어서였을까? 기원전 247년, 한고조로부터 시작되어 청나라 광서제에 이르는 중국왕조 2000여년 사이에는 208명의 황제가 있었는데 그들의 평균 수명은 38세로 나타났다. 그들 중 권력쟁탈자인 정적에 의해 목숨을 잃은 황제가 삼분의 일이나 되었으며 그것도 대부분 남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 형제들과의 골육상쟁에 의한 죽음이었다. 왕건이 개국한지 474년에 망한 고려조의 왕가를 살펴보아도 피비린내나는 다툼은 마찬가지였다. 목종과 의종의 시해. 28대 충혜왕 30세 독살, 30대 충정왕 15세 독살. 31대 공민왕 45세 시해. 32대 우왕 25세 시해. 33대 창왕 10세 시해. 34대 마지막 임금 공양왕마저 시해. 조선왕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통계에 의하면 조선왕조 임금들의 평균수명은 44세로 기록되고 있는데 단명한 이유는 이렇게 설명되고 있다. 그들은 지엄한 왕손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손발을 거의 쓰지 않았다. 심지어 세수까지 손수 할 필요가 없었다. 극귀의 신분으로 몸을 쓸 일이 적었다. 이러한 절대 운동부족과 과다한 영양 섭취. 게다가 후궁 처첩을 거느리고 자행되던 마구잡이식 보신과 무절제한 성생활. 그것으로 기갈이 소진되었으니 어찌 단명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조선조 제24대 헌종은 여색을 너무도 가까이 하여 피와 가래를 토하다가 보령 스물 셋의 나이로 승하하고 말았다. 튼튼한 몸을 가진 더꺼머리 총각, 강화도령도 철종으로 즉위하자 술과 여색으로 인해 서른 셋의 젊은 나이로 승하했다. 그런가하면 장수를 누리던 권력 쟁탈자들의 말로는 또 어떠하였을까? 그들의 대부분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채, 알바레스병이나 파킨슨병, 신경매독 등으로 인해 전부 정신병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얄타회담에 참가했던 루주벨트, 처칠, 스탈린은 차례로 알바레스병을 앓아 뇌가 이미 온전치 못했다. 파킨슨병을 앓던 프랑코, 무솔리니, 히틀러도 정신이상자였고 가믈랑과 무솔리니는 신경매독까지 겸하고 있었다. 아디슨병을 앓던 케네디나 혈액병을 앓던 프랑스의 퐁피두 역시 코티죤 복용으로 정신치매의 장해를 겪고 있었다. 레닌과 모택동, 사라잘은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생을 마쳤다. 편집병적인 정신질환으로 파면권고 사직을 당한 닉슨. 딱정벌레 라는 별명이 붙었던 후르시쵸프와 영국의 조지3세는 조울증 정신병으로 권좌에서 쫓겨남을 당해야만 했다. 절대권력을 쟁취한 다음 그들의 말로는 더 이상 좋을 게 없었다. 권력의 정점에서 비참하게 사라진 독재자의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소련의 요시프 스탈린,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세스쿠, 이란의 무하마드 팔레비,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우간다의 이디아민, 포르투갈의 안토니우스 살라자르, 필리핀의 페르디나드 마르코스,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등. 암살 위협에 쫓겨 정처없는 망명길에 오른 이란의 팔레비왕. 집권 8년만에 조국 우간다를 철저하게 피폐화시킨 이디아민, 그도 1979년 4월,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20년간 필리핀을 독재해 왔던 마르코스도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에 밀려 국외탈출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코스는 자신이 희망하던 망명지 싱가포르, 스페인에서도 입국을 거절 당했다. 미국에서도 그가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의 도둑 이란 사실을 알고는 더 이상 보호해 주지 않았다. 권좌에서 쫓겨난지 4년이 되던 1989년 5월, 하와이의 어느 조그만 병원에서 그는 오욕의 물든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는 국민경제 파탄혐의와 대학살의 죄목으로 특별재판 끝에 곧바로 사형되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화공에서 일약 독재자로 변신한 그는 세큐리타테라고 하는 국가안전부를 동원해 반체제 인사에 대한 고문과 살인 및 공포정치를 자행해 왔었다. 작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를 거인중의 거인 이라 찬미했으며 화가들은 그를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였지만, 24년간 루마니아의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그가 하루아침에 사형수로 전락해 부부가 함께 총살을 당하고 마는 비운을 겪었다. 살인마라 할지라도 생사기로의 벼랑 끝에 서서, 애인이던 에바브라운과 함께 동반자살을 한 히틀러라든지 우미인과 항우의 죽음은 때로 묘한 정서를 불러 일으키곤 한다. 그리고 나치스정권 탄생과 함께 그 정책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요세버 괴벨스. 그는 베를린 함락직전 총통관저에서 가족과 함께 권총으로 자살을 결행하였는데 한 때 이승만 정권에 편승하여 세도를 부린 이기붕 일가족의 떠들썩한 권총자살 장면이 거기에 겹쳐지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자살이 아니면 타살. 그래서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결코 뛰어 내릴 수 없었던 그들은 권력의 가혹함 때문에 언제까지고 호랑이 등위에 있지 않으면 안되는 형벌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먹느냐, 먹히느냐로 그들의 운명은 참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