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을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논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진주에는 시인 묵객들의 발자취가 끊일 사이 없는 가운데 만해 한용운은 또 이런 시를 남기고 있다.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 낮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는 살같은 광음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논개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
시인들에게 시의 대상이 되어 온 그 '썩지 않는 향기'의 주인공 논개는 너무 많이 알려진 인물이라 여기서는 그녀를 추모하는 추모시 두어 편부터 소개해 보았다. 임진왜란은 고려 시대 몽고의 침입 이래 가장 큰 전란이었다. 일본의 풍신수길은 국내를 통일한 뒤 그 여세로 조선 강토에 야욕을 품고 침입해 왔다. 임진년 4월 13일 부산포가 떨어지자 적은 물밀 듯이 북상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전란의 소용돌이 속을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관군의 승리를 목마르게 기원했다. 그러나 전장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란 모두 불길하고 비통한 것들 뿐이었다. "일본의 제 1군은 소서행장이란 자를 앞세우고 부산포를 거쳐 상주로 밀고 올라온다더라." "부산포에서 정발 장군이 전사했다더라." "어디 정발 장군뿐인가. 동래에선 부사 송상현 공이 또 전사했다네." "일본의 제 2군은 가등청정이란 놈을 앞세우고 언양을 거쳐 동쪽으로 충주.안성을 차례로......." "저런저런, 허면 미구에 한성이 떨어질 판이로구만?" "누가 아니라나. 게다가 놈들의 제 3군은 흑전장정이란 놈과 또 누구냐, 그 소조천융경이란 자가 거느리고서 김해를 거쳐 창원.마산을 꿰뚫고 조치원.청주를 모두 집어삼키고 일로 한성을 향해 밀어올리고 있다니, 어허! 이 나라는 인제 망해 버렸네." 강토가 이 지경이 되자 선조는 도성을 빠져 나가 송도와 평양을 거쳐 의주로 몽진을 떠났다. 그러나 조선 강토가 모두 일본 침략군의 발 아래 놓였어도 영남의 진주성만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진주성이 이처럼 철썩 같은 방비를 하게 된 것은 목사 김시민의 굳은 충성심 때문이었다. 적은 수삼차 진주성을 공략했으나 그 때마다 김시민은 진두에 서서 지휘, 적군이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하게 하였다. 진주 성민들을 철썩같이 단결했다. 이들 성민 가운데는 기생들의 무리도 끼어 있었다. 기생들은 관군들의 음식을 마련해 주기도 하고 치마폭에 돌을 날라다 의병들에게 건네어 주기도 하였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논개도 그 자리에 끼어 있었다. 논개는 본디 장수 출신으로서 조실 부모하여 올데 갈데 없는 신세가 되자 기적에 이름을 올려 가무 속에 묻혀 살아왔다. 진주성은 날이 갈수록 세력이 약해져 갔다. 일본군의 수는 연일 증강되었다. 일본군의 장수로 세천충흥, 가등광태, 장곡천수일 등 쟁쟁한 자들이 성의 함락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뉘 알았으랴. 퇴군하는 적을 추격하던 김시민 장군은 뜻밖에도 적의 조총에 맞고 전사했다. 진주성은 곧 충청병사 황진이 임시로 맡아 지켰다.
임진년 그해가 저물고 이듬해 계사년 6월이 되었다. 일본군은 지난해 진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것을 분해하며 총력을 기울였다. 전세는 처음에는 조선군이 유리한 듯했다. 그러나 물밀 듯이 밀려오는 적의 대군을 불과 2만여 명의 관군과 의병으로 막아 내기란 힘겨운 일이었다. 마침내 북쪽 성문을 지키던 김천일 장군의 군대가 밀리기 시작했다. 김천일은 촉석루까지 쫓기다 역부족이어서 강 아래로 뛰어내려 죽었다. 이어 황진과 이종인도 전사했다. 삽시간에 성은 무너졌다. 8만여 군민이 적의 발 아래 짓밟혔다. 논개는 이 쑥대밭 속에서 비장한 결심을 가졌다.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단정히 갈아입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시각에 적장들은 진주성 함락의 기쁨을 서로 나누며 촉석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논개는 요염한 자태로 적장들이 노는 자리로 갔다. 논개의 눈에 적장 모곡촌육조가 들어왔다. 그녀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둠이 깔렸다.
"오, 조선이노 처녀, 우리하고 놀이하려고 온 것이오까?" 논개는 그자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눈으로 그자를 끌었다. 적장은 와락 논개를 잡아 끌었다. 그자의 입에서 술냄새가 확 풍겼다. 적장에 이끌려 놀이하는 자리로 간 논개는 그 자리에서 시키는대로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다. 적장이 야심을 품고 논개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 저, 저리로 가자!" "저리로 가서 무엇을 하자는 건가요?" 적장 모곡천은 논개의 허리를 안았다. 그 순간 논개는 모곡천을 힘껏 껴안고 남강 푸른 물에 몸을 던졌다. 조선을 침략해 온 일본군 장수는 논개와 함께 강물 속에 떨어져 죽어 버렸다.
논개여.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