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 [Rilke, Rainer Maria] 본명은 René Maria Rilke. 1875. 12. 4 프라하~1926. 12. 29 스위스 발몽.
침묵을 동반한 어둠이 점점 에워싸면 나는 그 속에 가라앉고 말아서 끝내는 겁먹은 새처럼 되고 만다. 어딘가에 나를 겨냥하는 시선이 있는 것만 같아 긴장으로 숨이 조여올 때, 릴케의 시 한 구절을 나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세상 어디에선가, 까닭도 없이 누군가 이 밤에 죽어가고 있는데 그것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마음 무거울 때>의 일절
하나의 섬뜩한 경종이 아닐 수 없다. 라이나 마리아 릴케만큼 죽음을 깊이 천착한 시인도 드물 것 같다. 그는 31세에 비가를 썼고, 47세에 죽음을 감지하면서 <말테의 수기>를 썼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모두 이곳으로 오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여기에서 모두 죽어가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말테의 수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그는 거기에서 임신한 여인의 태 속에 이미 죽음이 싹트고 있다 는 무서운 경고를 내린다. <드노의 비가>에서는 성숙한 인간은 무르익은 과일이 나무에서 덜어지듯 죽음에 대한 원한은 없다. 그러니 완전한 죽음을 끌어안고, 깊은 잠에 드는 것뿐이다 라고 말한다. 인간 존재의 중심에는 죽음이 본질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죽음은 인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으며, 인간 삶의 핵심이며 진주처럼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 역시 죽음이라는 설명이다. <비가>의 핵심은 역시 죽음이었던 것이다. 47세에 릴케는 <비가>를 완성하고 <비가>에 와서 비로소 죽음을 긍정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드노의 비가>를 읽고 자기와 같은 사상을 릴케는 시로 표현했다 고 말했다. 그는 한때 발레리의 시 <바닷가의 무덤>을 읽고 심취하여 그의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불어로 시를 짓는 등, 한창 그의 의욕이 고조되었을 때 하필 지병이던 폐병이 악화되고 만다. 그래서 발몽요양소를 떠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죽었다. 장미 가시에 찔려. 시인이란 다른 일로 죽지 않는 것. 이것은 프랑스의 여류시인 알리에뜨 오드라가 쓴 <릴케의 죽음>이란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릴케는 여자친구를 위해 장미를 꺾다가 가시에 찔린 것이 화농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51세였다. 그는 폐결핵의 치료를 위해 3년 전(48세)부터 스위스의 발몽 요양소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가 죽은 것은 1926년 12월 29일이었다. 장례식을 하던 날은 각처에서 달려온 친구들로 자리가 가득 메워졌으며,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장식하였다. 묘지는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비탈진 언덕에 있었다. 릴케는 죽기 보름 전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는 지금 끝없는 고통에 걸려 있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혈액병(백혈병)이 전신에 퍼지고 잇다. 고통이 무엇인지 잘 모르던 나는 고통에의 순종을 배우고 있다. 백 번 저항을 하면서 억지로 순종을 배우면서 나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라고 있다. 릴케는 자신이 그렇게 빨리 죽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죽기 하루 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새벽에 눈을 한번 크게 뜨고 머리를 조금 드는 듯하더니 이내 푹 쓰러지고 말았다. 새벽 5시, 밖에는 흰눈으로 덮인 알프스의 산령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의 죽음은 죽음과 위대가 하나의 말인 것처럼 혼연일치한 엄숙한 죽음이었다 고 기록되어지고 있다.
주여. 저마다 자신의 죽음을 죽을 수 있게 하소서.
그의 <시도 시집>에 들어 있는 시 한 구절이 화두로 남는다. 자신의 죽음을 죽을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