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뒤흔든 여인들 - 구석봉
제 5부 왕권과 여권
유리와 사로잡은 사랑의 승리자 - 화희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은 부인과 자식복이 없는 역대 제왕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세 사람의 비와 계실 가운데 전비는 궁 안으로 맞아들인 지 불과 1년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고, 뒤이어 얻어들인 두 계실 가운데서 한나라 출신의 아리따운 부인이 계실끼리 서로 사랑 다툼을 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산 채로 왕의 곁을 아주 떠나가 버리는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 유리왕에게는 정비와 계실 사이에서 낳은 오륙 남매의 왕자와 공주가 있었으나 태자로 삼은 도심이 이십 전에 요절하는가 하면, 무용을 좋아하던 해명 왕자가 21세 때 "땅에다 창을 꽂아 놓고 말을 달려 그 창에 찔려"죽기도 한다. 또 다른 왕자는 나루에서 물놀이를 하다 어이없게 익사체로 발견되기도 하는 등 왕실의 불운이 끊일 사이 없이 일어났다. 뒷날 이복 형제인 온조(백제 시조)의 형 비류의 자살까지 있고 보면 가히 고구려 건국 초기 파란 많은 왕실의 우여곡절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유리왕은 등극 2년째 되던 7월, 주위의 재촉으로 예를 가추어 다물후 송양왕의 딸을 맞아 왕비로 삼았었다. 송양이란 사람은 일찍이 부이르국 왕이었으나 동명성왕과 무예를 다투어 폐하자 나라를 고구려에 바쳐 항복하고 다물후란 봉작을 받아 여생을 즐기던 몸이었다. 왕비 송씨는 말하자면 부이르국 공주의 신분이던 것이 이제는 고구려국 정비가 되었으니 부귀 영화가 그에게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게다가 왕은 자기의 미모에 혹하여 정사보다는 침방에 머물러 있는 날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송비를 맞아들인 뒤부터 유리왕은 매사가 즐겁기만 하였다. 유리왕의 어머니 예씨부인은 그러나 지존의 몸이 주야로 젊은 송비의 침전에만 묻혀 있는 것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 "상께서는 중저느이 침소에 드는 것을 절제하기 바라오." 아버지 주몽의 원자로 유리왕이 해야 할 일은 지금 너무나 많았다. 주몽이 22세의 젊은 나이로 아직 궁실을 지을 겨를도 없이 부이르호(지금의 몽골 부이르 호와 중국 할힌골 강 사이) 호반 위에 집을 짓고 국호를 고구려라 부르기 시작한 지 불과 19년 만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는가. 주몽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지 가까스로 1년, 아버지가 멸망시킨 송양의 딸을 맞아 비로 삼기는 하였으나 이복형 온조가 남진하여 백제국을 세웠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아버지가 멸망시킨 행인국(백두산의 동남쪽)과 북옥저(두만강 유역)의 여러 성읍에서 간간이 저항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이다. 나라의 기틀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유리왕은 송비의 침전에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그녀의 색탐어린 눈길에 헤어날 줄을 몰랐다. 이를 보다 못한 예씨 부인이 다시 한 번 타이르고 나선다. "계집이란 너무 아껴 주면 끝내 요귀를 부리는 법이라오." 그러나 아들 유리왕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상감! 아무리 여자를 처음 가져 본다 하기로서니 두 달씩이나 정사를 뒤로 미루고 송비 곁에만 눌러 있는 것은 지나친 일이오. 이제는 침전에서 나와 정사를 보살피구려." 하는 수 없이 유리왕은 송비의 방에서 나와 정사를 보는 척했다. 예씨 부인은 그 사이 헬쑥해진 아들에게 사냥을 권했다. "상께서는 일찍부터 사냥의 명수였소. 국기를 다지고 성채를 보전하려면 사냥을 게을리해서는 아니되오." 유리왕은 예씨 부인의 모성애를 차마 저버리지 못해 사냥길에 올랐다. 왕도의 서쪽으로 나간 왕은 흰 노루를 잡아 왔다. 다시 자기 침전으로 끌어들였다. "마마, 오늘 밤에는 마마를 모시기 전에 한 말씀 사뢸 말이 있사옵니다." "어허, 중전의 말이라면 내 다른 일 제쳐놓고 들어 보겠소. 그래 무슨 말이오?" 유리왕은 송비의 입술만 바라보아도 벌써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부이르 호반에서 왕실의 공주로 자라난 송비는 미려한 자태와 얼굴의 아름다움 가운데서도 남달리 입술이 고와서 남자를 호려 현혹시키는 매력이 있다고 궁녀들간에는 쑥덕공론의 대상이 되어오던 참이었다. "마마." "어허, 무슨 말인지 어서 얘기해 보라니까." "신첩은 아마도 왕자를 가지게 될 것 같나이다." 부끄러움을 머금고 왕자 잉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송비의 마음은 또 다른 희열에 떨리기만 하였다. "중전, 그대가 왕자를 잉태했다구?" 유리왕은 송비의 손을 덥석 잡고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송비가 왕자를 갖게 되자 유리왕은 하는 일마다 순조롭고 재미가 있었다. 사냥길에 오르면 어김없이 짐승을 잡아 들였으며, 대궐 안 나무 숲에 신작이 모여들어 앞으로 태어날 왕자의 장래를 미리부터 축복해 주는 듯했다. 해가 바뀌어 유리왕 즉위 3년 7월, 마침내 송비는 왕자를 낳았다. 왕은 왕자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낳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그해 10월에 어이없게도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송비의 죽음은 몸을 함부로 굴린 것이 화근이 되었다고도 하고, 산후 조리가 부실하여 빚어진 비극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중전의 죽음으로 유리왕은 날개 부러진 매요, 허리 부러진 호랑이 꼴이 되어 궁 안에 틀어박혀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외지로 망명한 아버지와 떨어져서 불루하게 자라난 유리왕은 도대체 호사스런 궁중 생활이 몸에 서툴렀다. 아버지 주몽의 승하로 하루아침에 왕위에 오른 그가 부이르국 송양왕의 귀한 딸을 맞아 맛보기 시작한 자웅지교에 날새는 줄 몰랐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송비에게 기울인 정이 마침내 결실을 보아 왕자까지 얻어서 그 기쁨이 하늘에 닿을 듯했는데 사랑하는 왕비는 지금 그의 곁을 떠나고 없는 것이다. 유리왕은 폐부를 찌르는 아픈 나날을 술로 달래가며 송비와의 즐거웠던 나날을 되새기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유리왕의 그 같은 심정을 메워 보려고 머리를 짜내었다. "마마, 중전마마께서 홍서하신 지 반삭이 지났나이다." 대신 옥지가 송비의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뜻으로 아뢴다. 이어 구추와 도조가 옥지를 가들고 나섰다. "마마, 시절은 바야흐로 사냥철이옵니다. 궁 밖으로 말을 달려 화살을 날리시면 온갖 시름이 다 날아가 버릴 것이옵니다." "이궁이 있는 골천에 흰 노루가 나타났다 하옵니다. 이궁으로 납시어 보심이 어떠하올지요." 세 심복 대신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있던 유리왕은 귀가 번쩍 열렸다. "뭐, 이궁에 있는 골천?" "예, 그 곳에 흰 노루가......." "흰 노루고 검은 노루고 간에 낼큼 수레를 마련토록 하오!" 흰 노루를 쏘아 넘기고 싶어서가 아니다. 지난 7월 골천에다 이궁을 짓고 있을 때 일이 문득 유리왕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때문이었다. "아, 그 골천의 낭자......" 유리왕은 헛소리처럼 중얼거리며 급히 마련해 온 수레에 올라 골천으로 향했다. 그가 서둘러 이궁으로 향한 것은 골천에 살고 있는 한 낭자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화희. '아직도 그 낭자가 골천에 살고 있을까......' 골천에 이궁을 짓기 시작하자 유리왕은 틈이 나는 대로 현장으로 달려가 역사를 독려했다. 송비가 왕자를 낳은 직후의 일이라 왕의 골천행은 왕 혼자서 거동하는 때가 많았다. 이궁이 완성되던 날도 유리왕은 산고를 치르는 송비를 궁안에 남겨 두고 여러 대신들만 데리고 골천에 나타났었다. 이궁은 그렇게 웅대하지 않았으나 아담하고 조촐했다. 화희는 이궁의 낙성을 보려고 모여든 골천 고을 사람들 가운데에 섞여 있었다. 화희는 그만한 또래의 낭자들과 함께 이궁 남문 밖에 서서 재재거렸다. "오늘 주상마마께서 납신다면서?" "아무렴, 궁궐이 낙성되는데 주인이 안 나와 볼 수 있어?" 그날따라 남의 눈에 돋보이도록 화사하게 차려 입은 화희는 유리왕의 수레가 이궁에 나타나기만을 바랐다. 실상 화희는 며칠 전부터 주제넘게도 대궐 안의 유리왕을 혼자 그려 보고 있었다. '유리왕은 어떻게 생기신 분이실까. 사냥으로 다져진 젊디젊은 왕이 어떻게 그렇듯 나약한 송비와 살아갈 수 있을까. 소문에 듣기로 송비는 밤마다 주상 전하를 너무 괴롭혀 피골이 상접해 있다는데 그 소문이 사실일까?' 왕자를 낳고부터 차마 마주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쇠해 있다는 송비. 그 송비의 자리를 내가 대신 차지할 수는 없을까........ 본디 투기심이 많고 호사스런 생활을 동경해 온 화희는 이렇듯 중전의 자리를 넘보기도 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후궁의 자리라도 한자라 차지하였으면 하고 공상해 왔었다. 화희의 그 같은 공상은 유리왕의 골천 이궁 거동으로 싹수가 보이는 듯하였다. 유리왕의 수레가 골천에 나타나자 고을 안의 낭자들은 설레는 가슴을 안고 수레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저봐! 수레 위에 의젓하게 앉아 계신 상감........" "상감 곁에는 누구지?" "음, 저 분이 상감의 어머니 예씨 부인이라네." 송비의 동행 대신 왕은 예씨 부인가 함께 이궁의 낙성연에 나타난 것이다. 화희는 남자들을 헤치고 수레 쪽으로 바짝 걸어 나왔다. 길거리에 늘어선 골천 고을 백성들 속에서 유리왕은 한 패거리의 낭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단연 자색이 빼어난 화희의 모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유리왕은 화희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예씨 부인을 돌아다보았다. "저--- 기 저 낭자들의 맨 앞줄에서 있는 저 낭자는 위집 딸이온지요." "어디의......... 누구 말이오?" 예씨 부인도 이미 환하게 돋보이는 화희의 모습을 발견한 뒤였으나 일부러 딴청을 부렸다. 유리왕은 안타까운 듯 되풀이했다. "저--- 기저, 꽃밭처럼 환한........ 저, 저........." "상감! 이궁의 낙성연에 거동하신 게 아니라 꽃밭을 구경하러 나오셨소?" 예씨 부인의 매몰찬 한 마디에 유리왕은 화희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어 들였으나 그날 먼발치로 본 화희의 자태는 그 뒤로도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유리왕의 수레가 골천 이궁에 닿았다. 유리왕은 뒤따라온 대신들에게 분부를 내렸다. "경들은 알고 있을 터, 전날 이궁의 낙성연 날 과인이 먼발치로 보아 둔 낭자를 이리로 불러다 주오." "화희 낭자 말씀이오니까?" 눈치 빠른 옥지가 왕의 비위를 맞추려고 냉큼 아뢴다. "그, 그렇소. 화희 낭자를 어서!" 그날 밤 화희는 골천의 이궁에서 처음으로 유리왕을 모셨다. 유리왕은 정실 송비가 홍서한 직후에 계실 화희를 맞아들여 이궁 살림을 펼친 셈이었다. 어머니 예씨 부인은 아들이 미천한 집안의 낭자로 계실을 삼은 것이 못마땅했으나 덮어두기로 하였다. 유리왕이 중전과 사별한 뒤 곧 계실과 골천 이궁에서 깨가 쏟아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소문은 온 나라 안에 퍼지고, 이는 멀리 한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화희는 한 번 유리왕을 사로잡은 뒤 왕이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릴 수 없도록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유리왕이 여색을 탐한다는 소문은 자천 타천의 많은 계실 후보자를 대궐 안으로 들여보내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가 한나라에서 건너온 치희였다. 유리왕은 화희와 치희 두 계실의 침소를 왔다갔다하며 두 사람 가운데 누구를 정비로 올려 놓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었으나 그 문제만은 쉽사리 결정이 나지 않았다. 그 사이 화희와 치희는 유리왕을 가운데 두고 사랑 다툼도 어지간히 해왔을 뿐만 아니라, 왕자를 낳는 일에도 양보 없이 다투기만 했다. 화희가 왕자를 낳으면 치희도 낳고, 치희가 입덧이 나면 어김없이 화희도 잉태를 하여 왕자를 낳고는 했다. 유리왕 슬하에는 죽은 송비의 소생까지를 합하여 도절, 해명, 무휼 등 네 왕자와 공주들이 탄생했다. 화희와 치희는 사사건건 충돌을 일삼았고 사랑을 다투었다. 하는 수 없이 유리왕은 양곡의 동쪽과 서쪽에 두 궁궐을 짓고 두 계실을 따로따로 살게 하였다. 어느 날 유리왕은 기산으로 사냥을 떠나 이레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화희는 이때다 싶어 치희가 머물러 사는 서궁으로 달려갔다. "치희 이년, 나오너라!" 화희는 처음부터 치희를 얕잡아보고 해라였다. 화희는 등 뒤에는 그녀의 시녀들이 살기등등하여 버티고 서 있었다. "무슨 일로 내 궁에 들렀소!" 치희는 비록 유리왕의 사랑을 받아 몇 명의 왕자를 낳은 몸이긴 했으나 화희와 마주서면 늘상 가슴이 떨렸다. "무슨 일로 내가 여기 들렀는지, 네년은 모른다구 했것다." "그래요. 왜 남의 궁에 나타나서 눈에다 쌍심지를 세우느냔 말야." 치희도 한껏 용기를 내어 버텨 섰다. "하, 요런, 한나라 오랑캐 계집이 누굴 놀리네." "한나라 무엇이라구?" "한나라 오랑캐! 한나라 오랑캐! 천박한, 천박한 이 비첩아." 화희가 내쏟는 말에 치희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한나라 오랑캐라는 욕설에도 참을 수 없지만 더욱 분한 것은 계집종의 신분으로 유리왕의 계실이 된 자기를 비웃는데는 눈물이 솟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부끄럽고 분한 마음을 더 진정치 못하고 치희는 앞으로 내달았다. "마마! 어디로 가시옵니까?" 치희의 시녀들이 울부짖으며 뒤따랐으나 치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나라 쪽으로 달렸다. 마침 7일간의 사냥을 마치고 양곡의 궁으로 돌아오던 유리왕은 치희가 도망간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뒤를 쫒았다. 그러나 치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유리왕은 단신 말을 달려 한나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전만큼 강 건너에 방금 배에서 내린 치희가 백사장을 달려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치희! 돌아와 주오. 치희---." 유리왕은 사랑하는 여자를 놓쳐 버리고 홀러 나무 그늘에 주저앉아 맥을 놓았다. 때마침 꾀꼬리들이 나뭇가지 위에 날아와 서로 부리를 마주 비비며 노래를 했다. 유리왕은 울적한 심사를 누르지 못해 입술을 달싹거려 노래를 지어 불렀다.
꾀꼬리는 쌍쌍이 암놈 수놈 노니는데 외로울사 이 내몸은 뉘와 더불어 돌아갈까
뒷날 유리왕의 "황조가"라 불리게 된 이 노래는 삼국 시대 최초의 사랑 노래가 되었다. 화희의 독점욕에 희생되어 그의 곁을 떠난 치희를 유리왕은 못 견디게 그리워한 나머지 이 "황조가"를 되풀이하여 불러 보는 것이었다. "전하 그만 돌아가옵소서." 어느 결에 따라왔는지 화희는 눈물 괸 유리왕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서 환궁하기를 재촉했다. 치희의 약점을 잡아 그녀를 아주 자기 나라로 내어쫒는 데 성공한 화희는 그 뒤 유리왕이 다른 계실을 맞아들이지 못하도록 사랑의 마술로 왕을 사로잡아 버리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