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뒤흔든 여인들 - 구석봉
제 4부 창업의 새 아침
용꿈 꾸고 얻은 '주름 왕자' -장화 왕후
고려 태조 왕건이 대광왕 규의 딸을 맞아 열여섯번째의 비로 삼았는데 태조의 아들 혜종이 또한 규의 딸을 맞아 부인으로 삼았으니 부자가 같은 집 딸을 아내로 얻은 셈이었다. 이렇듯 고려 왕실에서 근친혼을 하게 된 것은 왕씨가 용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 겨드랑 밑에 비늘이 있어 이 비늘의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의 식구들끼리 결혼하게 된 것이라고도 전해 온다. 용종이니 용자리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설로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태조 왕건이 용의 자식을 낳았다는 기록과 함께 둘째 부인 장화 왕후와의 정담을 빼어 놓을 수가 없다. 오 소저는 전라도 나주 고을에서도 후미진 목포에 사록 있었다. 오 소저의 아비는 뒷날 다린군이라 하였는데, 이 다린군은 연위의 딸 덕교에게 장가를 들어 오 소저를 낳았다고 한다. 오 소저는 비록 구차하고 지체가 변변치 못한 가정에 태어나기는 했어도 용모만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게다가 오 소저가 우물에 나가 실을 씻으면 언제나 우물 위로 오색 영롱한 구름이 비단결처럼 펼쳐지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신기한 눈으로 그 구름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런 연유로 하여 오 소저가 실을 씻던 우물은 뒷날 '완사천'이라 불리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오 소저는 용꿈을 꾸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말 별 요상한 꿈도 다 있네요, 잉." "무슨 꿈을 꾸었길래 이렇게 놀라 일어나 앉느냐, 얘야." 덩달아 잠에서 깬 부모가 딸의 얼굴을 살핀다. "아, 글쎄 저 바다에 살고 있는 용이 말이어유." "뭐, 용이라니. 그럼 네가 용꿈을 꾸었더란 말이냐?" "하면유....... 용이 바다에서 기어 나와서 내 뱃속으로 쏘옥 들어갔는디....." "아이고 망측해라. 처녀가 용꿈을 꾸다니 용꿈이란 아이 밴 여자들이나 꾸는 꿈인디......" 오 소저의 부모는 하도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처녀가 아이 밴 꿈을 꾸다니, 처녀가 아이 밴 꿈을 꾸다니........' 오 소저는 자기의 배를 슬면시 쓸어 보면서 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망측도 해라. 내가 태몽을 다 꾸다니, 용꿈을 꾸다니.......' 그날 하루를 우물터에서 보낸 오 소저는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려도 일어설 줄을 몰랐다. 마침 동산에 달이 떠오르자 그녀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우물가에서 옷을 벗었다. 오 소저는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온 몸을 씻어내리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기어 나온 용이 자기 뱃속으로 들어갔으니 우물물로 배를 씻어내리면 그 용이 배 안에서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번 오 소저의 배 안으로 들어간 용은 다시 배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아랫배를 문지르고 또 문질러 보아도 허사였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그 밤이 기울도록 자기의 배를 문질러 보는 것이었으나 한 번 자기 뱃속으로 들어가 버린 용은 좀처럼 배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이튿날 밤에도, 사흘째 되는 날 밤에도 우물터에서 자기 배를 씻어내리던 오 소저는 바로 사흘째 되던 날 밤, 달빛을 안고 달려온 늠름한 사내에게 그만 그녀의 알몸을 들켜 버리고 만다. "대, 댁은 뉘시기에 아녀자가 몸을 씻고 있는 자리에 기침 소리도 없이 나타나는 겁니까......" 허겁지겁 서둘러 옷을 입은 오 소저가 별처럼 쏘아대는 말에, 그러나 말을 타고 달려온 무장과 그의 막료들은 당당하기만 했다. "낭자는 이 마을에 사는가?" "예, 그러하옵니다마는........" "먼 길을 달려 왔더니 피로하구먼. 낭자의 집에 가 하룻밤 유하고 갈거나." "예. 그러심 절 따라 오셔유......." 젊은 무장과 무장의 막료 부하들을 데리고 오 소저는 별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오 소저는 실상 젊은 무장의 늠름하고 당돌한 부탁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뿌리치기는 켜녕 무장의 강렬한 눈길이 자기 얼굴에 내리꽂혔을 때 그녀는 자기 뱃속으로 용이 들어올 때 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 '옳아. 바다의 용은 바로 이분인지도 몰라. 바다의 용이 내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나서 이 사나이를 만났으니 이것이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일시 분명하이.' 오 소저의 아비는 무장의 이름을 한 번 듣고 차마 그의 청을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젊은 무장은 그 당시 남정 북벌의 용장으로 이름이 파다하던 왕건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왕건 일행을 맞아 오 소저의 집에서는 접객 준비로 한창 부산하게 돌아갔다. 누추한 방에 새 자리를 구해 깔고 오 소저의 아비는 딸을 불러 장군을 정중하게 모시라 당부하는 것이다. "얘야, 저분의 함자를 들어 보니 장차 크게 되실 어른이시다. 실수 없이 잘 모시도록 하여라." ".........." 고개를 숙인 오 소저는 부끄러움과 기대가 뒤엉킨 심정으로 아비의 말을 듣고 있다. "내 집에 든 귀한 손님에게 값진 음식을 대접하지 못하는 대신 저분의 객고를 풀어 드림은 바로 이 애비의 일이 자네 정성이니라. 알아들었느냐." "예........" 이번에는 어미가 거들고 나선다. "가뜩이나 너는 용이 네 배 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저 분을 만났으니 반드시 귀한 아들을 보게 될 게다. 자고로, 달이 품에 안기면 귀한 아들을 보게 될 게다. 자고로, 달이 품에 안기면 귀한 자식을 낳고, 해와 달이 방에 들어오면 역시 아들을 낳고, 호랑이가 남자를 낳으면 또한 아들을 낳고, 학이 품에 와 안기면 귀한 자식을 나흔다 했니라. 알아들었냐?" "예, 엄니........." "그럼 어서 방 안으로 들어가 보렴." 어미에게 들이 떼밀려 오 소저는 왕건이 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군 장군으로 나주에 출진, 목포에다 배를 머무르고 있었던 왕건이 그날 밤 오 소저의 시중을 받게 된 데에는 또한 기이한 점도 없지 않았다. "오 소저." 낭자를 품에 안으며 왕건은 무장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낭자를 찾아낸 거 전혀 하늘의 뜻이었네." "........." "배를 머무르고 산천을 바라보니, 아 저것 좀 보거라! 오색 영롱한 구름이 한 곳을 내리비치질 않았겠나." "........." "나는 부하들을 데리고 서둘러 말을 달렸네. 오색 구름이 내려앉은 곳에 다다라 보니, 어허 그 곳에 바로 낭자가......" "부끄럽사와요, 장군." 왕건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고 앉아 있는 오 소저를 지그시 끌어당겨 자리 위를 뒹굴었다. 이미 여자를 다루는 일에 서두르지 않은 왕건이었다. 비록 시골 구석에 자란 미천한 신분이기는 했으나 오 소저의 성숙한 몸은 미지의 건장한 남성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래, 바다의 용은 바로 이분일게야. 바다의 용이 내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나서 이 사내를 만난 건 또한 무슨 인연일 것이니, 나는 이 사내와의 인연을 내 것으로 비끄러매야겠다.' 오 소저는 왕건의 남성을 받아들이면서 한 가닥 희망에 가슴을 떨었다. '난 이분의 아기를 낳고 싶어. 이분처럼 늠름한 아들을 낳고 말테야.' 그러나 왕건의 생각은 조금 엉뚱했다. '오색 구름을 따라 낭자를 만나게 되었지만 미천한 이 낭자에게 아기를 낳게 해서는 아니된다.' 그리하여 왕건은 오 소저의 몸 깊숙히 꽂아 넣었던 자기의 남성을 결정적인 순간에 뽑아내어 자리 위에 정액을 쏟아 버렸다. 글 인하여 토정은 모두 오 소저의 몸 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자리 위에 흥건하게 흘러 버린 것이다. 오 소저는 순간 왕건의 가슴을 밀쳐 버리고 발딱 일어나 앉았다. '무슨 짓이에요, 장군.......' 오 소저의 입에서 그런 항변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분명히 그렇게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다. 다음 순간 오 소저는 자리 위에 얼굴을 묻고 토정한 왕건의 그것을 모두 입 안으로 넘겼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다져두는 것이었다. '한 번 더 장군을 모셔서 이번에는 실수 없이 이분의 씨를 받아 넣어야지......'
오 소저는 제쪽에서 열을 올려 왕건의 목을 쓸어안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왕건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의 남성을 뽑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토정은 모두 자리 위에서 흥건하게 묻어 버리고 말았다.
오 소저는 깜짝 놀라 이번에도 몸을 발딱 일으켰다.
그녀는 자리 가까이로 입을 벌리고 가서 토정한 왕건의 그것을 모두
목으로 넘겼다.
'이 어른이 내가 임신하는 걸 원치 않으시지만 난 기필코 이 어른의
아기를 낳고 말 테다.'
이튿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왕건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리 위에다
사정하는 것이었으나 그 때마다 오 소저는 자리 위의 정액을 모두 목으로
넘겨 버리는 것이었다.
며칠 밤을 그렇게 오 소저의 집에서 묵고 왕건은 다시 길을 떠났다.
몇 년 뒤 왕건은 북으로 궁예의 군사를 누르고, 남으로 견훤의 후백제를
토평한 뒤 급기야 개경에 도읍을 정하고 고려를 세웠다.
그 사이 아들을 낳은 오 소저는 태조 왕건의 부름을 받고 개경으로
올라왔다. 왕후에의 꿈을 안고 달려간 오 소저에게 왕건은 그녀를 제
1왕후로 맞아들일 수 없는 사유부터 설명했다. 제 1왕후 유씨는 왕건이
남정을 떠나는 길에 정주에서 얻은 여자라 했다.
정주 부호 유천궁이 유씨의 아비여서 왕건은 그녀의 집에서 군자금을
보태어 쓰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와 중전(유씨)이 처음 만난 곳도 그대처럼 우물터에서였소."
왕건은 회상에 잠겼다. 유 중전이 아직 물 오른 수양버들 가지처럼
여리고 싱싱하던 시절. 어느 해던가, 더위 속을 달려 우물터에 다다른
왕건은 두레박 속에 떠 있는 나뭇잎을 후후 불어 가면서 물을 마셨다.
물 한 두레박을 다 마시고 난 왕건은 그제서야 궁금한 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내가 마시는 물에 버들잎을 띄웠는가."
"예. 그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장군님을 뵈오니 먼 길을 달려온 듯 하와
너무 목이 마르던 참에 급히 물을 마시다 사례가 드시면 큰 일이다 싶어
버들잎을 띄웠나이다."
"오, 그랬던가.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구먼."
유씨가 두레박 물에 버들잎을 띄운 슬기는 왕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그날 밤 자기 집에서 왕건을 모신 유씨는 그 뒤 소식이 끊긴 왕건을
기다려 지조를 정결하게 지켰을 뿐만 아니라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가
태조가 등극한 뒤 부름을 받아 왕후가 되었다.
오 왕후보다 한 발 앞서 대궐로 들어온 유 왕후에게는 웬일인지 아직
왕자가 없었다. 오 왕후는 그게 다행이다 싶어 자기 소생의 왕자 무를
왕건에게 보였다.
오씨 소생의 어린 왕자 무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왕건은 그만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마마, 이 아이의 얼굴에 무엇이 씌어 있기라도 한지요?"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네만 무의 얼굴에 이 무슨 자리 자국인고?"
"자리 자국이라니오, 마마!"
"보시오, 얼굴에 분명한 이 자리 자국!"
기실 왕자 무의 얼굴에는 태어날 때부터 자리 자국이 선명하게 돋아나
있었는데,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오 왕후가 왕건과 시침할 때 자리
위에 사정한 정액을 목으로 넘겨서 임신한 때문이었다.
오 왕후 소생 무 왕자는 자라나면서 차츰 이상한 짓을 곧잘 했다. 무
왕자는 자기가 자는 자리 위에다 항상 물을 뿌려 두는가 하면, 또 큰 병에
물을 담아 놓고 팔꿈치 씻기를 좋아하였다. 이 모양을 본 대궐 안
사람들은 모를 두고, '용의 자식'이니 '용자'니 하고 수군거렸다. 용의
자식이라 물을 좋아하고 물로 씻기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오 왕후는 부끄럼 없이,
"아무렴, 내 아들 무는 용의 자식이고 말고. 용꿈을 꾸고 마마를
모셨으니 용의 자식이고 말고."
하면서 대견해하였다.
어느덧 무의 나이 일곱 살이 되었다.
그 때까지 태조 왕건은 무를 태자로 봉하지 않고 있었다. 무의 용덕이
뛰어나고 담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어머니가 미천하여
장차 사위함을 얻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 왕후 소생
무를 태자로 봉하는 데는 약간의 장애가 없지도 않았다.
원래 태조 왕건의 아들은 30명이나 되는 왕비와 후궁들 사이에서 스물
여섯이나 탄생하였으니 그 가운데서 차기 왕위에 오를 태자를 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수월한 노릇만은 아니었다. 오 왕후 소생 무를 비롯하여 제
16왕후인 광주원 부인 소생과 유검필의 딸 동양원 부인의 소생이 각각
태자와 왕위 계승을 동시에 노렸다.
오 왕후는 지난날 태조를 모실 때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매일같이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날 태조와 교섭을 가질 때 자리 위에
쏟아 버린 정액을 오 왕후는 재빨리 목으로 넘기질 않았던가.
그 때는 부끄러운 줄도 몰랐었고 불결한 줄도 몰랐었다. 오 왕후의 오직
한 가닥 바람을 그저 어떻게 해서든지 왕자를 낳아서 왕의 관심을 끌어
보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녀의 욕심대로 태조의 아들을 낳기는 하였지만 왕자가 일곱 살이
되도록 아무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오 왕후는 자기보다 뒤늦게 대궐로 들어온 왕비들이 와자를 낳을
때마다 무가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오 왕후의 그 같은 기우는 뒤늦게 태조에게 전달되었다.
어느 날 태조는 오 왕후에게 옷상자 한 개를 하사하였다.
"이는 옷상자가 아니옵니까, 마마?"
"그렇소, 옷상자일세."
"이 안에 무슨 옷이 들어 있나이까, 마마?"
"상자를 열어 보면 알리라."
태조가 돌아간 뒤 오 왕후는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아, 이는 자황포가 아닌가."
자황포란 와아가 입는 옷이었다. 태조가 자황포를 보낸 것은 왕자 무를
태자로 삼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오 왕후는 그 길로 대광 박술회를 찾아가 왕이 자황포를 내린 사실을
알렸다.
박술회는 태조의 뜻을 알고 무를 세워 태자로 삼을 것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오 왕후는 그녀의 숙원을 풀게 되었다.
뒷날 태자 무가 고려의 제 2대 임금이 되었을 때 그에게는 접왕이라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
접왕이란 곧 '주름진 임금'이란 뜻이니, 혜종의 어머니 장화 왕후 오씨가
자리에 버린 태조 왕건의 정액을 목으로 넘겨 태어났다는 내력이 그
접왕이란 말 속에는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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