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쿼바디스 에서 보았듯이 네로 황제는 로마 시가지에 불을 지른 다음, 그것을 보고 시를 짓고 자신의 눈물을 유리관에 담는 등 온갖 해프닝을 벌인다. 그런 네로에게 용감히 일침을 가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숙함을 조소하던 사람이 바로 황제의 사부 세네카였다. 세네카는 네로가 자기의 어머니 아그릿빠나를 죽인 후 차츰 난행에 빠져들자 그런 네로의 부도덕한 성행을 억제시키는 일에 공헌하였으며 또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막대한 재산을 쌓기도 했다. 네로의 측근들은 그를 공공연히 비난하고 배척하였다. 이것을 얼른 알아차린 세네카는 은퇴를 결심했다. 네로에게 전 재산까지도 헌납하려 하였으나 황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네로는 과거의 은사임을 잊지않고 애호와 존경으로써 그를 은퇴시켰다. 세네카는 이후 간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병을 핑계삼아 로마에는 거의 나가지 않고 학문연구에만 전념하였다. 그의 교육사상은 <도덕 서간집> 124편에 압축되어 있다. 인생은 악에 가까우므로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은 이성에 의하여 정욕을 극복하고 지배하며, 도덕생활을 할 수 있는 데서만 가치있는 것이다. 또 교육자는 의사처럼 좋은 말로 환자의 심정을 치료하고 충고로써 덕을 행하게 해야 하며 부도덕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훈련에 있어서는 엄격주의를 주장해야 하며 특히 교사의 방은을 강하게 경계한다. 고 했다. 즉, 교사의 노동에는 보수를 지불할 수 있으나, 공헌에 대하여는 지불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사를 존경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이 바로 자신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던 네로에게 사형을 당하게 될 줄이야.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 가 남긴 세네카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황제의 명령을 따라 마지막 일을 치르고자 결심한 그는 먼저 팔목 동맥에 단검을 꽂았다. 숨통이 끊어질 만큼 피가 솟구치지 않자 다리와 무릎을 차례로 찔렀으나 그것으로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 마지막으로 독약을 마셔야 했다. 그러나 독약도 그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가지를 못했다. 그래서 결국은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 수증기에 질식사한 것이다. 사실 그는 몇 십 년 동안 죽음과 자살 이라는 주제로 숙고하면서 죽음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적도 있었다. 건강을, 내 최상의 모습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나는 결코 노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노령이 내 정신을 혼돈시키고 육체를 조금씩 갉아먹어 살아 있음 이 아닌 호흡 만을 남겨 놓게 된다면, 나는 미련 없이 떠날 생각이다. (중략)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내 몸을 스스로 해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희망도 없이 고통만 겪어야 한다면 나는 스스로 떠날 생각이다. 그것은 고통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그 동안 살아온 인생을 더럽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은최하면서까지 삶을 연장하고 싶어했으나 결국 타의에 의해서 스스로 세상을 떠나야 했다. 즉, 고통스러운 삶에서 미련 없이 떠나는 것 이 아니라 미련이 남아있는 삶쪽에서 고통스럽게 떠났던 것이다.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셔윈 비 누랜드는 자신의 저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세테카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철학적 인식과 발표된 그의 글로 미루어 보아 전문가(?)처럼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로마의 저명한 철학가였을지는 모르나 그는 인간의 육체에 관한한 무지했다. 자기가 자기를 죽여야 하는 실천적 결행은 70세에 가까운 노철학자에게 있어서도 결코 쉬은 문제는 아니었던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