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티누스 프로티누스(서기 205-270)는 일체가 죽어도 죽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인간에게는 신적인 것이 있다 는 것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이다. 나는 가끔 육체로 부터 나 자신으로 깨어나 다른 모든 것 밖으로 나가고, 나 자신의 내부로 들어와 경탄할만한 아름다음을 거기에서 발견한다. 이렇게 황홀경의 체험을 말한 그는 신비주의의 개조가 되어 시인 키츠, 예이츠, 엘리어트, 릴케 등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의 사상은 폴피리우스, 디오니소스, 에크하르트, 스피노자, 헤겔 등으로 계승되었다. 프로티누스는 자기가 육체를 쓰고 있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그래서 그는 조상이나 부모나 고향에 대하여 일체 말하지 않았다. 고 폴피리우스는 그의 전기에 적고 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초상화를 그리려고 했을 때, 그는 노발대발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 자연이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그림자(모상)를 쓰고 있는 것도 부족해서 좀더 오래 가기 위해서 그림자의 그림자를 그려서 그것을 바라보자는 것이 대체 무슨 가치가 있느냐? 그는 만년에 폐결핵과 후두염을 앓았다. 문둥병에 걸린 것처럼 손발에 종기가 흉했으나 끝까지 강의실에서 최선을 다했다. 흐려진 목소리로 프로티누스는 임종때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들의 속에 있는 신적인 것을 만유 속에 있는 신적인 것 밑으로 돌이켜 올려보내기 위해서 나는 지금 애쓰고 있다.
한 마리의 뱀이 그가 누워 있는 침대 및을 지나서 담 사이의 틈 바구니로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었을 때, 바로 그는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66세였다.
데모낙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낙스는 107세가 되어 러시아의 작가 고골리처럼 식음을 전폐하여 굶어 죽고 말았다. 당신 같은 분의 유해가 개나 새 따위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부당합니다. 제자들은 그의 유언을 따를 수 없다고 우겼다. 데모낙스는 말하였다. 죽어서도 아직 살아 있는 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데모낙스도 몸(시신)을 가벼이 여겼다.
함허득통 스님 무학 대사의 제자이던 함허득통 스님은 더 쉬운 말로 이것을 설명했다. 원래 죽음이란 없는 것이요,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의 불멸성을 인정한다면 부스럼딱지와도 같은 시신은 아무렇게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죽음은 부스럼이 딱지져 딱지를 없애는 것과 같고, 묶은 것을 풀어서 칼틀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고, 새가 초롱을 나오는 것과 같고. 즉 생사를 초월하는 것이요. 그런데도 육신을 잊지 못해 어찌 미련을 두는지, 이런 사람의 시체는 물에 띄어도 옳고 길가에 팽개쳐도 옳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